계급 세습권으로서 학교폭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의 낯선 사이] 계급 세습권으로서 학교폭력

지금 한국 사회를 맹렬히 작동시키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교폭력은 한국 사회의 결과일까. 원인일까. 나는 학교폭력이 그 자체로 문제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어른 문화의 부수적인 문제로 여기는 발상에 반대한다. 그런 면에서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문제도 나이가 아니라 죄질로 논의 구도가 이동해야 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노예무역 당시 백인 사냥꾼들에게 잡힌 흑인들은 ‘상품 운반’ 과정에서 기아와 폭력으로 이미 반 이상 사망했다. 주지하다시피 초기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였다. 서구는 자원 약탈과 점령으로 세계를 자기 땅으로 만들었다. 특히 미국사는 선주민과 흑인에 대한 학살, 그 자체이다. 우리는 매일 이 역사를 이어간다. 올해 1월 미국 테네시주에서 일어난 29세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 사망 사건의 가해자는 다섯 명. 모두 흑인 경찰이었다.

노예무역과 글로벌 플랫폼 자본주의는 다른 시대인가. 흑인 사냥은 야만이고 현재는 갈등인가? 어쨌든 이 폭력에는 ‘맥락’이 있다. 노동력 착취든 혐오든 흑인의 성취에 대한 두려움이든…. 가해자 입장에서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 이야기. 내 주변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평범한 남자 어린이가 있다. 부모의 훈육, 아니 화풀이로 자주 맞았다. 그 시절 드물었던 가정교사에게도 많이 맞았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교사와 동급생에게 맞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모에게, 형제자매에게,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저항도 했지만 <더 글로리>와 사정은 비슷했다. 학창 시절 12년을 겨우 버틴 그는 전경(의경)으로 복무했는데, 그곳에서는 폭력을 당하는 것이 근무였다. 시위 진압에 나갔다가 주택가에서 대학생들에게 잡혔고,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맞았다. 1991년의 일이다. 지나가던 시민에 의해 구출되었지만 이후 자살했다.

중산층 가정의 외아들이었던 그는 맞기 위해 태어난 셈이다. 그가 당한 폭력은 가정폭력인가, 국가폭력인가, 경찰폭력인가, 시위대의 폭력인가. 이 모든 폭력의 연결인가.

이제는 ‘맥락’조차 없어져

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학폭이라고 줄여서 말하는 세태가 불편하다. 줄임말은 가볍게 들린다. 학교폭력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양상은 다르지만 유치원에서도 대학에서도 드물지 않다. 예전에 학교폭력은 교사의 체벌을 의미했다. 콩나물 시루 교실에서 ‘사랑의 매’는 교사에게도 부모에게도 설득력이 있었다. 1998~1999년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해찬 전 의원은 “체벌 금지”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전교조 교사들조차 “현장을 모르는 얘기”라고 절망했다.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한 반이 80명 내외였고 한 학년이 15~17개 학급이었다. 아이들은 마구 떠들었고 앞줄과 뒷줄은 다른 세상이었다. 교육 이전에, 담임 교사가 자기 반 학생 이름만 다 외워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다른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많은 교사들이 ‘작은’ 일벌백계부터 출석부나 대걸레 자루를 사용했다. 흑인에 대한 폭력처럼(?) 반공 훈육 시대의 교육 현장에도 이처럼 어떤 ‘맥락’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교사들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그냥 그래.” “수업 내내 나를 쳐다보는 학생이 없어.” “선생의 출신 학교를 알아내고 비웃어.”

40대 후반 초등학교 여교사는 말한다. “6학년 담임을 맡으면 늙어서 실력이 없다고 학부모의 교체 요구가 이어지고, 1학년을 맡으면 아이들이 제가 안 예쁘다고 항의합니다. 매년 이 압력을 견딜 수가 없어요. 가족 중 버는 이들이 있는 여교사들은 제 나이쯤 거의 그만둡니다.”

그녀의 말을 믿었지만, 믿어지지는 않았다. “못생겼다”는 학생의 항의로 교사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지금은 학생이 교사를 때리고, 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몰래 사진을 찍는다. 일부 교사는 폭력의 목격자가 되는 상황이 두려워, 가해 학생을 위해 현장에서 ‘사라져준다’.

예전에는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사례가 많았다. 먼저 입학하면 이후 여러 가지 인생 스케줄에 유리하고 또래보다 똑똑하다고 여겨졌다. 요즘은 학교폭력 때문에 일부러 아홉 살에 입학시키는 부모들이 많다.

이런 현실을 몰랐던 내 친구는 ‘똑똑하지만 체격은 왜소한’ 4월생 자녀를 일곱 살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몸집이 작은 딸이 같은 반 아이들의 책가방을 여섯 개씩 지고 휘청거리며 귀가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를 자퇴시킨 후, 자책감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드라마 <더 글로리>는 특정 자본주의 시대의 규범 없는 사회를 보여준다. 교육은 물론 법도, 인격도, 문명도, 상식도…. 그 어느 것도 작동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증명한다. 전근대 사회는 잘 모르겠고, 첨단 자본주의 시대의 자녀는 부모로부터 돈이나 쉬운 입학 외에도 폭력 행사 권력을 세습받는다. 어른이 되기 전에 고문과 살인이 세습되는 것이다.

폭력 행사의 무한 자유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아는 듯하지만, 진정 알지는 못한다. 피해 역시 증명 불가능하다. 정의(복수)는 더욱 불가능하다. 극도로 노력한 천재의 성공한 복수는, 현실에 없는 얘기다. 드라마가 정화 작용을 주는 이유다.

그런 경험을 겪는 사람은 온전히 살 수 없다. 피해자는 득도나 죽음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득도도 왕자였던 석가모니 같은 사람이나 할 수 있다. 피해자는 득도할 자원이 없다.

학력과 외모 등 일반적인 계급 세습 외에도, 자녀에게 고문과 성폭력을 할 권력을 물려주는 한국의 로컬 자본주의에 새로운 명명이 필요하다. 노예여서, 마녀여서, 신분이 천해서, 공부를 못해서, 떠들어서, 말썽을 부려서, 담배를 피워서, 자질이 없는 교원 때문에 맞는 시대는 지났다. 폭력을 서비스하는 민간 용역 업체나 전쟁 대행 주식회사 직원도 아닌, ‘있는 집’ 학생들이 사람을 죽을 만큼 때리거나 죽일 수 있다.

계급 세습에 폭력 무료 사용권. 정순신씨 사태가 현 정권의 인사 문제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모든 정권에 그런 부모들이 있었다. 진보 중산층 자녀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은 따돌림 정도가 아니라 부모가 돈이 없으면 당하는 ‘순수한’ 폭력이다.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은 스스럼없이 이 순수한 폭력에 가담한다.

학교폭력 소재 드라마를 연출한 안길호 PD가 대표적이다. 내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일까.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과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사귀는 상황도 익숙지 않다. 안 PD는 처음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했다”는 이야기다.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해야 한다. 그의 기억은 여론에 따라 선택적이었다. 문제 제기가 약했다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의미다. 억울하다면 폭력의 정도를 밝히는 것이 그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고데기(kote機)’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테니.

정순신씨가 중요 정무직에 임명되었기에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상황에 맞는 가해 이익을 취했다. 안 PD는 너무 간단하게 소명했고, 정씨 아들은 로스쿨 입학에 유리하다는 철학과에 다닌다. 두 남성은 있는 자를 대표하는 보통 명사다. 가수 황영웅, 이다영·재영 자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범죄 혐의자다. 형법은 범죄 행위를 다룬다. 혐의자가 ‘재능’이 있으면 무죄인가.

기존의 폭력 개념은 자유주의 관점에서 자신의 의지에 반한 경우를 말한다. 현행법의 성폭력 개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폭력 개념은 폭력을 막지 못한다. 성폭력, 학교폭력은 젠더와 계급이라는 구조의 문제다. 성폭력에서 동의는 피해자의 저항 노력으로 둔갑해버렸고 학교폭력에서는 동의 자체가 난센스다.

돈과 폭력은 교환 관계에 있었다. 용병(傭兵, mercenary)의 어원은 돈(money)이고, 병사(soldier)는 월급을 의미하는 소금(salt)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폭력은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부자에게 매우 유용한 상품이다. 부자를 대신해 돈을 받고 감옥에 가는 가난한 이들도 있는데, 학교폭력은 ‘교환’ 관계도 없다. 피해자만 평생 대가를 지불한다. 피해 학생을 위해 비밀 자경단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전과는 다른 한(恨)의 나라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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