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푼다고 되겠나, 살 만한 세상이 돼야지

이명희 논설위원

0.78명. 이 숫자, 암울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 수)인데, 역대 최저치다. 정신차려 보니 출산율 세계 꼴찌다. 이미 수십년 전에 인구위기 ‘경고장’을 받았는데, 단박에 되돌리려니 뭘 해도 약발이 안 먹힌다.

이명희 논설위원

이명희 논설위원

징후는 곳곳에 있었다. 숱한 위기 징후를 외면했을 뿐이다. 인구 부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는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의 예측쯤은 SF영화에나 나올 허황된 얘기로 듣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노인들만 북적거리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내놓은 반전 없는 저출생 대책을 살피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요즘 와서야 인구 부족이 문제가 됐지, 그 시절에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개념 없는’ 국민이 되는 일이었다. 아예 숫자까지 못 박은 국가의 출산 지침을 온 국민이 잘도 따랐다. 정책은 목표를 넘어 초과 달성에 이른다. 합계출산율은 1983년 2.06명까지 떨어졌다. 이때 이미 한 사회가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인 2.1명이 무너졌다. 한국이 ‘저출생 사회’로 진입하는 서막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면 겁을 먹었어야 했지만, 정부의 산아제한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그 위험 신호를 알아챌 문제의식이 부족했다. 정부도 사태 파악을 못했다. 출생률은 계속 떨어졌다. 대응이 필요했지만 정부는 1996년에야 출산억제책을 거둬들였다. 저출생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인구 유지선이 무너지고 20여년이 지난 참여정부 때다. 유럽 등에 비하면 출발이 10~20년 이상 늦은 셈이다.

정부는 2004년 2월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를 발족했고, 다음해 5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했다. 그 법에 따라 시작된 게 5개년 단위의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야심찬 계획이었건만, 결과만 보면 대실패다. 한국은 인구수축 사회에 진입했다. 지역소멸, 국민연금 고갈 등 인구위기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출생률을 높이는 것이다. 왜 아이를 안 낳을까? 이제까지 추진한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전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부모급여, 신혼부부전용 주택자금 대출 같은 지원 방안이 나왔다. 보육 부담을 덜어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만으로는 끝도 없이 추락하는 출생률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일자리와 육아·주거 등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 임기에 맞춰 성과가 나올 것만 찾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이번에 저고위에서 논의된 방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더니. 이젠 1인 가구가 대세이고,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더 이상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다. 이성 부부와 두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의 신화는 저문 지 오래다. 인구감소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 묻고 싶다. 한국에서 한국인만 살아야 할까. 아이는 꼭 ‘정상 가족’에서 태어나야 할까.

그런 면에서 저출생 문제는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낡은 현실을 깨기 위한 혼신의 발버둥이 필요하다. 한데 정부의 흐름은 이와 역행한다. 여성가족부는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서 발의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냈다. 동거 및 사실혼 부부, 위탁가정도 법률상 가정으로 인정받게 하겠다던 입장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뒤집은 것이다. 정부가 0.78이라는 숫자에 절박함이 있는 건지 의문이다.

인구 쇼크에 속수무책인데 뭐라도 해야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일이 아니다. 저고위가 올해 안에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철학자 에릭 호퍼의 “혁명이 변화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변화가 혁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아포리즘을 되새기자.

필요한 것은 윤 대통령 주문대로 유례없는 ‘특단’의 정책이지 대통령의 결심이 아니다. 그 결심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들이자는 시대착오적인 방안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 얼마 전만 해도 ‘주 최대 69시간’을 둘러싼 논란으로 아까운 봄날을 날렸다. 답은 명확하다. 살 만한 세상이 돼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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