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지키는 것 또한 탄소중립 기술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역사를 지키는 것 또한 탄소중립 기술이다

서울의 5개 궁궐은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도시숲이기에
탄소흡수·공기정화는 물론
열저감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궁궐의 도시숲은
정말 소중한 것이고
반드시 지킬 자산이다

우리의 역사를 잘 지키고
잘 관리하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
탄소중립 기술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선조가
후세를 위해 남겨둔
위대한 기술일지 모른다

며칠 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가 경복궁 근정전 일대에서 열렸다. 세계 유행을 선도하는 명품 브랜드의 패션쇼가 한국의 중심 서울 도심에서 열린 것도 대단한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런웨이가 궁궐이라는 것이다. 역사 드라마 속 임금과 신하들은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어 유행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궁궐에서 열린 패션쇼라니 재밌다. 개인적으로 패션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이런 행사가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영상을 찾아보고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면을 밝히는 별은 런웨이를 걷는 모델이 아니라 궁궐 그 자체였다. 이 아름답고 웅장한 광경을 전 세계인이 봤을 것이라 생각하니 괜히 뿌듯해진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외세의 침입과 전쟁으로 무너진 역사를 바로 세운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를 지키는 것은 이 정도 가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수 있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서울에는 다섯 개 궁이 있다. 경복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 그리고 경희궁. 5개 궁궐의 공통점은 넓은 녹지에 많은 생태자원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토양, 그리고 작은 연못을 포함한 도시숲이 있다. 궁궐 내 도시숲은 궁궐 시설의 경관을 아름답게 해주는 배경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적 기능이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먼저 도시숲은 서울의 건물, 자동차, 발전소 등에서 배출하는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2년 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서울의 궁궐 내 도시숲이 얼마나 탄소를 흡수할 수 있을지 계산해본 적이 있다. 정확한 수치는 면밀한 분석을 해야겠지만 경복궁·덕수궁·창덕궁·창경궁과 종묘의 도시숲이 빨아들이는 탄소 흡수량이 1년에 150t 정도로 추정됐다. 숲을 공유하고 있는 창경궁과 창덕궁은 1년에 약 103.2t, 경복궁은 약 15.66t, 덕수궁은 약 3.68t, 종묘는 약 26.88t이다. 이 양을 모두 합하면 자동차에 넣는 가솔린 약 20만ℓ를 태울 때 나오는 탄소량과 같다. 예를 들어 연비가 ℓ당 16.25㎞인 가솔린 차량으로 서울~부산을 5000번 왕복할 수 있는 양이다.

개인적 호기심에서 출발한 궁궐 도시숲의 탄소흡수량 계산이었지만, 양이 적지 않음에 놀랐다. 그래서 좀 더 면밀한 분석을 통한 궁궐 도시숲의 탄소흡수량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지난달 아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궁궐을 관리하는 문화재청과 도시숲을 연구하는 산림청이 손잡고 궁능과 관련한 도시숲 연구를 함께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으로 여러 일을 하면서 정부 부처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기 때문에 문화재청과 산림청의 연구협약은 개인적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앞으로 두 정부기관의 협력을 통해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새로운 탄소 흡수원을 발굴해낸다면 마른 수건을 짜듯이 한 방울의 탄소흡수량이라도 힘들게 모아 탄소중립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서울이란 거대 도시의 허파 구실

먼 미래의 일 같은 탄소중립뿐만 아니라 도시숲은 지금 당장 우리가 경험하는 악기상(극한기후 현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며칠 지나면 다가올 여름 폭염 같은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뜨겁게 달궈진 도시에서 궁궐 내 도시숲은 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피난처가 되어준다.

그런데 도시숲의 진짜 위력은 어둠이 밀려오면 더 강해진다. 흔히 ‘도시열섬’이라고 불리는 인공열의 효과는 낮보다는 밤에 강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여름철 폭염이 오면 도심은 주변지역에 비해 훨씬 더 강한 열대야 현상을 경험한다.

그런데 아마 경험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무더운 여름날 저녁 궁궐 주변에 가면 조금 시원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더운 여름날 인공열이 가득한 도심은 공기가 뜨거워 상승하는 경향이 있지만 낮 동안 공기가 냉각된 궁궐 내 숲은 상대적으로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가라앉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달구어진 공기가 빠져나간 도심의 공기를 채우기 위해 차가운 궁궐 내 공기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궁궐 내 도시숲은 도시의 뜨거운 인공열을 낮춰주는 자연 에어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의 빈도 및 강도는 증가할 것이라(나는 확신한다!) 앞으로 에어컨 사용은 필수적인 상황이기에 개인이 감당해야 할 전기요금의 부담을 고려한다면 도시숲이 있는 ‘숲세권’이 인공열이 가득한 역세권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동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다들 잘 알겠지만 그 비싸다는 역세권은 보통 대기질이 좋지 않다. 주로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숲은 대기질이 좋은 편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기질을 악화시킬 만큼 심각한 오염원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도시숲 내 식물의 기공을 통한 흡수나 나뭇잎, 줄기, 가지 등의 흡착, 그리고 외부에서 수송되는 미세먼지를 차폐하는 기능을 통해 미세먼지가 상대적으로 낮아 대기질이 좋은 편이다. 실제 산림과학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창경궁 도시숲 같은 경우 연간 164.3㎏의 대기 오염물질을 저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외곽의 울창한 숲과 견주어 전혀 떨어지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생태계의 안식처 역할도

마지막으로 도시의 허파 구실을 하는 도시숲은 인간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생태계 구성요소를 위한 안식처의 역할을 하고 있다. 궁궐 도시숲은 도시 내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오래전부터 아이와 함께 창경궁이나 경복궁을 자주 찾아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개미, 벌, 다람쥐, 청설모, 고양이, 이름 모를 동물들, 그리고 다양한 꽃과 나무 등 아이에게는 신기하고 즐거운 생물들이 존재한다. 가끔 어릴 때 봤던 곤충을 만나면 나 또한 너무 즐겁다.

이렇게 도시 내에서 다양한 생명체가 나름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기에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지고 있는 도시숲의 생물다양성은 그 어떤 수치로도 가늠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결국 이렇게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도시숲이기에 뛰어난 탄소흡수, 공기정화, 열저감 같은 기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기후위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공기 중에 쌓이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배출원에서 탄소포집을 하고, 바람과 태양으로부터 전기를 만들어 더 이상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모두 다 좋은 기술이다.

그런데 지금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기술들이 당장 우리가 배출하는 탄소를 없애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미래기술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 기술인 도시숲을 잘 활용해야 한다. 늘 곁에 있기에 공들이지 않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잘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이나 제조 같은 부문에서 1%를 줄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단 1% 흡수라도, 아니 그보다 적더라도 지금 당장 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소중한 것이고 반드시 지켜야 할 자산이다. 바로 궁궐의 도시숲 같은 것들이다.

결국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잘 관리하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 탄소중립 기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선조가 후세를 위해 남겨준 위대한 기술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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