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작은 서점을 열었다. 귀한 지면을 개인 홍보에 쓰는 것 같아 그간 굳이 쓰지 않았는데, 얼마 전 오픈 이벤트 하나가 끝나 그 감상을 적어두려 한다. 이 서점은 5평 남짓한, 8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그래도 책을 팔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만든다. 얼마 전 소설집 <회색 인간>으로 유명한 김동식 작가와 서점에서 만나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북토크를 하면 2시간 정도 몇명의 사람들과 함께 진행하고, 그들의 책에 서명을 해주고 작가는 곧 떠날 것이었다. 그러기엔 무언가 아쉬웠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절반, 작가님이 절반을 부담해, 1박2일 동안 서점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책을 사서 선물하고 서명도 해 드리고 원한다면 사진도 찍어 드리고 하면 어떻겠냐고.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의 책 <회색 인간>은 요다 출판사와 내가 함께 기획해 만든 책이다. 얼마 전 86쇄를 찍었으니까 20만부 가까이 판매되었을 것이다. 김동식 작가도 출판사도 많이 벌었을 것이고, 요다 출판사의 한기호 대표가 기획 인세를 챙겨줘 나도 벌 만큼 벌었다. 그러나 작가에게 서점에 와서 당신 돈으로 책을 사서 모든 방문객에게 선물하라니, 말도 안 되는 제안이 분명하다. 김동식 작가는 답했다. 그냥 자신이 모두 내겠다고. 나는 그에게 다시 절반씩 부담하자고 하고, 5월 마지막 주 주말에 서점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가졌다.
서점에 도착한 김동식 작가는 말했다. “강원도까지 저를 보러 올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많이 와야 스무명쯤 오지 않을까요.” 그러나 오전 10시부터 몇명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점심이 지나자 20번이 넘는 대기번호가 생겼다.
사람들은 서점 옆 한옥 스테이 서와정에서 김동식 소설집의 원화 전시회를 보고, 툇마루에 앉아 제공된 한과와 음료를 먹고, 서점에 들어와 김동식 작가와 만났다. <회색 인간>과 신작 <인생 박물관> 중 한 권을 골라 서명을 받고 궁금했던 것을 묻고 사진을 찍고,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서울, 일산, 인천, 용인, 안산, 수원, 천안, 경주, 포항에서 왔다. 오직 이 서점에 오기 위해 아침에 출발했다가 다시 저녁에 돌아갈 예정인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강원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 저녁에는 요다 출판사의 한기호 대표가 왔다. 8년 가까이 봐 온 그인데, 그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 본 듯했다. 계속 웃었고, 밥과 커피를 사 주려 했고, 몇번이나 서점의 미래란 이런 것이다, 라는 말을 하면서, 또 계속 웃었다.
서점 옆에서 화초를 키우는 노부부도 왔고 철물점을 하는 어르신은 나에겐 왜 책을 안 주느냐며 찾아왔고, 그때마다 김동식 작가는 같은 표정과 태도로 모두를 맞이했다. 이틀 동안 220명의 사람들이 이 작은 서점을 찾았다. 행사가 끝나고 그가 말했다. “이 서점은 책이 아니라 김민섭이라는 사람을 파는 곳이네요.”
언젠가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길에서 게임기를 주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말하자 아버지는 세상에 공짜로 무엇을 주는 사람은 없다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들은 학습지 설명회를 열고 1년 구독을 한 아이들에게 조악한 게임기를 주었다고 했다. 나는 배신감보다도, 언젠가 내가 가진 것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서점에서 조금 더 부담하면서, 매달 마지막 주 주말마다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작가를 모시고 이런 행사를 해 보고프다. 이러한 이야기를 즐겁게 확장시켜 나가며, 언젠가 아버지께 말하고프다. 당신의 아들은 그런 삶의 태도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며 살아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