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의대반’과 부모 해방일지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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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인생에서 부모가 한 발자국 물러설 필요가 있다
부모의 역할은 세심한 건축가라기보다는 자상한 정원사와 비슷하다
영양분 주되 자연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유치가 다 빠지지도 않은 어린이들이 오후 시간을 2차방정식, 피타고라스 정리, 복잡한 영어 구문과 씨름하며 보내고 있다. 10년 뒤의 의대 진학을 위해서다. 최근 한 방송국의 <의대 블랙홀>이라는 취재물에 따르면 요즘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의대 입시 준비를 위한 ‘초등 의대반’ 운영이 한창이다.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학원 관계자는 말한다. “특히 의대를 희망한다고 그럴 때는 4학년 때부터 무조건 시작해줘야 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초등에서부터. 이제 의대반이 더 밑으로 내려간 거죠.” 특목고 입시를 위한 초등반, 특정 대학 입시를 위한 중등반 정도야 오래된 이야기지만, 이렇게 특정 학과 입시를 위해 초등학생을 대놓고 모집하는 일은 한국 사교육의 역사에서 처음이지 않나 싶다.

한편 최근 방영된 다른 방송국의 다큐 <인도 천재>에서는 공대 입시를 위해 1인당 국민총소득의 두 배에 해당하는 비용을 내고서라도 고등학생 자식을 명문 입시학원에 보내려고 하는 인도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도 한때는 엔지니어를 꿈꾸는 전국의 수재들이 공대로 몰린 시기가 있었다.

‘초등 의대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꽤 충격적이긴 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이과생들이 수능 성적 순으로 전국의 모든 의대를 다 채운 후에야 공대의 정원이 채워지기 시작한다는 소식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혀를 차는 이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의대냐 공대냐’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심지어 중·고등반이냐 초등반이냐도 핵심은 아니다. 그보다도 ‘초등 의대반’ 현상의 배후에는 사회구조, 양극화, 입시 제도, 저출생 등의 더 본질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리의 통념도 토론의 주제여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부모의 의사결정 패턴이 ‘초등 의대반’ 같은 기현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주디스 리치 해리스(2018년 작고)를 소환해보자. 그녀는 아동 발달에 관한 전통적 견해에 수류탄을 던진 심리학자였다. 해리스는 <양육 가설>이라는 책에서 부모의 양육 방식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가정(양육 가설)은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대신 자녀의 또래 집단과 유전적 성향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여전히 논란 중이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그녀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여러 분야에서 축적되었다. 적어도 그녀의 도발 이후에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력에 관한 믿음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부모보다 또래에 더 큰 영향 받아

가령 행동유전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쌍둥이 연구는 떨어져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가 행동, 성격, 삶의 결과 등에서 현저한 유사성을 보였다며 강력한 유전적 요소가 있음을 입증했다. 또한 발달심리학과 사회학 분야에서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커지며 부모보다는 친구의 말투, 행동,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들이 입증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작금의 ‘초등 의대반’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부모의 선택과 투자를 통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통적 견해를 깊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는 여전히 부모의 영향력을 과장하고 또래 집단의 영향과 자녀의 유전적 소인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명확히 해야 할 점은 적어도 한국의 부모는 자녀의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또래 집단에 대해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네 부모들은 자녀를 고급 수학 수업에 등록시킴으로써 최신 게임이나 아이돌 문화에 휩쓸리는 대신 고급의 수학적 개념과 진로 지향적 학습에 집중할 수 있게끔 전문화된 또래 집단 환경을 조기에 조성하려고 애쓴다. 언뜻 보면 특수한 또래 집단을 만들어주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부모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부모들이 가장 크게 실수하고 있는 부분은 그들이 지나칠 정도로 자녀의 환경과 그에 따른 또래 집단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어린 자녀를 고급 수학 입시학원에 밀어넣는 일은 해리스의 통찰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해리스가 말하려는 바는 우선적으로 자녀의 인격 형성에 부모의 역할이 크지 않으며 그에 비해 또래 집단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또래 집단을 특수하게 설계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또래 집단을 학업 성취자들로만 채우려는 부모는 자녀의 사회적, 심리적 성장에 필수적인 측면인 상호작용의 다양성을 간과하고 있다. 어린이는 다양한 경험과 상호작용을 통해 공감, 갈등 해결, 그 밖의 중요한 사회적 기술을 배운다. 아동복지 전문가들이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이 겪는 부정적 경험은 부모보다도 또래로부터 더 많이 온다는 점이다. 유년기의 가장 치명적 고통은 또래들 사이의 갈등과 괴롭힘이다. 이런 맥락에서 ‘초등 의대반’의 부모들이 자녀의 환경을 학업 성취에만 집중한다면 아이들은 필수적인 사회적 기술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자녀에 영혼의 집까지 줄 수 없다

한편 ‘초등 의대반’ 입시 교육은 해리스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유전적 요인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 부모들은 조기에 집중적인 학업 훈련을 받는 것이 반드시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아이들의 유전적 소인의 역할을 간과한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신체적 특징을 물려받는 것처럼 다양한 적성과 성향도 물려받는다. 모든 아이들이 경쟁이 치열한 학업 환경에서 성공하거나 의학과 같은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성향을 지닌 것은 아니다. 자녀에게 유전적 성향과 맞지 않은 길을 강요하면 불만과 성과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라는 말인가? 맹모삼천지교도 아니라면 말이다.

우선, 자녀의 환경에 대한 부모의 극단적 통제나 또래 집단에 대한 강압적 선택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해리스의 이론은 부모가 자신의 영향력 한계와 자녀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그리고 통제해야 하는 범위)를 명확히 인식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사회 전반적으로 성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재고해야 한다. 의사와 같은 명망 있는 직업이라는 단일한 렌즈를 통해 성취를 바라보는 대신, 다양한 열정, 재능, 경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예술가, 사회복지사, 데이터 과학자, 농부 등 각 직업은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사회 구조에도 크게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자녀의 인생에서 부모는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 이런 제안은 당위적 차원의 당부가 아니다. 오히려 사실에 근거한 냉정한 제안이다. 부모는 자녀의 인생에 큰 영향력이 없다. 관련 연구들에서 말하는바, 부모가 악보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교향곡을 만드는 것은 자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세심한 건축가라기보다는 자상한 정원사와 비슷하다. 영양분을 제공하되 자연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의 시집 <예언자>에 수록되어 있는 ‘아이들에 대하여’는 부모 해방 일지다. 자녀에 대해 불안과 자책이 느껴질 때마다 읊조리자.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닌 것을/ 그대는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 큰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하략).”

■장대익

진화학자이며 과학철학자.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연결시키는 연구와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 기술, 사회의 진화를 이야기해왔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학장) 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종의 기원> <통섭>(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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