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한식구

서정홍 농부 시인

지난 6월은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빴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농작물을 심고 거두는 시기가 해마다 달라 온 마음을 다 쏟아야만 했다. 장마가 오기 전에 가장 먼저 마늘을 뽑아서 사나흘쯤 밭두둑에서 말렸다. 기온이 너무 올라가면 마늘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마늘대로 마늘을 덮어가면서 한 줄로 펼쳐서 말렸다. 마늘대가 두꺼운 홍산 마늘은 이레쯤 말렸다. 마늘대를 잘라서 바로 건조기에 말리는 농부도 있지만, 소농들은 그냥 자연 바람에 말린다. 그리고 끈으로 묶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창고 천장에 걸어 두었다.

서정홍 농부 시인

서정홍 농부 시인

마늘 작업이 끝나고 나서는 양파대를 5㎝쯤 남기고 잘랐다. 그리고 사나흘 뒤에 뽑아서 그늘에 열흘쯤 말렸다. 말릴 때도 창고 안에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차광막 같은 그물을 깔아서 말렸다.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아야 제대로 잘 마르기 때문이다. 올해는 양파 주문이 적어 양파즙을 조금 짰다.

드디어 하지 무렵에 감자를 캤다. 감자밭이 300평 남짓 된다. 새벽 네 시쯤 일어나 간단하게 몸을 풀고, 앞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호미로 감자를 캔다. 캐다 보면 호미에 감자가 찍힐 때가 많다. 하필이면 크고 잘 생긴 녀석들이 잘 찍힌다. 더구나 날씨는 덥고 비지땀은 흐르고 손목에 힘이 빠질수록 더 많이 찍힌다.

캔 감자는 껍질이 벗겨지지 않게 보물 다루듯이 하나씩 하나씩 상자에 넣어 그늘에서 사나흘 말려 택배로 보냈다. 너무 크거나 작은 녀석들은 빼고, 벌레 먹거나 쭈글쭈글 못난 녀석들도 빼고, 잘생기고 매끈한 녀석들만 잘 가려 ‘먹는 농부’들한테 택배로 보냈다.

아내와 나는 도시 소비자를 한식구라 여겨 ‘먹는 농부’라 부른다. 농작물은 대부분 직거래하므로 먹는 농부들과 미리 재배 계약을 해서 심고 가꾼다. 그러니까 밭에 거름 뿌리고, 이랑을 만들고, 씨앗이나 모종 심을 때부터 먹는 농부들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조차 쓸 수가 없다.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먹는 농부들이 있어 몸은 고달프고 힘들지만 농사지을 맛이 절로 난다.

그런데 오늘 낮에 양파즙을 택배로 받은 먹는 농부한테서 전화가 왔다. “양파즙이 상자 안에서 터졌어요. 헤아려보니 네 개가 터졌네요. 다른 건 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참고로 해 주세요.” 저녁 무렵에 다른 먹는 농부한테서 전화가 왔다. “양파즙이 터져 엉망진창인데요. 택배 기사님이 터진 양파즙 상자를 비닐에 싸서 그냥 두고 갔어요. 당장 환불해 주세요. 먹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어요.”

전화를 받은 아내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농사철에는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던 아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품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좋으련만….” 나는 가만히 아내를 바라보았다. ‘여보, 먹는 농부가 무턱대고 따지기부터 하니까 서운하지요. 그래도 우리 모두 한식구잖아요. 한식구끼리 서로 보듬어 안고 살아갑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별을 노래하는 농부(農夫)잖아요.’ 아내한테 차마 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나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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