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과 지도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이용욱 정치에디터

리더는 무오류한 존재가 아니다. 업무 능력이 기본이지만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는 솔직함과 용기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리더들을 많이 봤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잘한 건 자기 공이고, 잘못된 것은 아랫사람의 무능과 게으름 탓이다. 그러나 남에게 떠넘기는 것도 한두번이다. 책임져주지 않는 리더를 누가 따르겠는가. 동서고금의 일화, 리더십에 대한 책들은 책임감을 지도자의 주요 자질로 꼽는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런 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좋은 리더와 거리가 멀다. 재난, 사건·사고, 정책 혼선이 빚어질 때마다 ‘내 책임이다’라는 말을 윤 대통령과 권력 주변에서 듣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일선 공무원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는 뉴스만 쏟아졌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귀책 사유를 물으면, 법적 책임 등을 이유로 침묵했다. 이번 호우 참사라고 다를까. 윤 대통령이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달라”며 공무원들을 닦달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 윤 대통령이 ‘지하차도’ 참변을 언급하지 않고, 현장을 찾지 않은 것도 예견했던 바다. 아랫사람 책임으로 돌리고, 참사에 거리를 두는 것은 대통령의 재난 대응 공식처럼 됐다.

이런 인식은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나”라고 경찰을 야단쳤다. 사교육과 이권 카르텔을 형성했다며 교육부를 꾸짖었고, “국정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다면 과감한 인사조치를 하라”며 전체 공무원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국정 실패를 공무원 탓으로 돌리는 언사였다. 대통령이 제3자나 정치평론가처럼 국정을 품평하는 것이 낯설다. 민주화 이후 이렇게 강력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 대통령이 있었나 싶다.

윤 대통령은 자기확신에 빠진 것 아닐까. ‘나는 최선을 다했고, 빈틈없이 대비했다. 내 지시대로 했다면 사고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공무원과 부처의 게으름이 문제다.’ 평생 피의자 위에 군림했던 윤 대통령에게는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아랫사람을 꾸짖는 게 속 편한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수해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윤 대통령 집권 이후 대형 참사만 벌써 세번째 일어났다. 정부가 제때 제대로 대응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들이다. 물론 잘못된 대처로 사건을 키운 공무원들의 잘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참사가 반복된다면 그건 일선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대통령이 그렇게 당부하고 질타했는데도, 공무원들이 따르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더 나쁜 것은 질타가 선택적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순방 중 명품숍 방문 등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구설수에 왜 침묵하나. 경찰은 이 잡듯 잡으면서 이태원 참사 책임을 져야 할 고등학교·대학교 후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감싸는 건 편파적이다. 여사 수행을 이유로 민간인 신분의 아내가 전용기에 타는 것을 방치한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은 ‘검찰식구’라 책임을 묻지 않았던 것인가. 편파성은 지도자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두목에게나 어울리는 특성이다. 윤 대통령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남 탓은 국정운영 차질로 이어진다. 잘못을 외부로 돌리면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고, 같은 잘못이 반복될 수 있다. 게다가 공직자에게 공(功)은 사유화하고, 책임은 외주화하는 상관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공무원에게는 솔선수범보다 복지부동이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직언하는 사람은 없다. 수해 때 우크라이나를 갔어야 했느냐는 비판에 “대통령이 계신 곳이 집무실”이라고 한 여당 정책위의장, 김 여사 명품숍 방문이 “문화탐방 외교”라는 윤핵관, 대통령에게 입시를 배웠다는 교육부 장관. 챗GPT도 무릎 꿇을 기상천외한 아부들이 쏟아진다.

그러나 아첨에 취할 때가 아니다. 입안의 혀처럼 구는 아부꾼들은 대통령 힘이 빠지는 임기 후반 먼지처럼 사라지게 마련이다. 여론은 분명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30~35%를 오가지만, 부정평가는 60% 안팎을 맴도는 게 그 증거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1에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그렇게 남 탓해봐야 세상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정말로 이기고 싶으면 필요한 사람이 되면 돼. 남 탓은 그만하고 네 실력으로. 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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