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노르망디 해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지난 5월 홍세화 선생이 강릉에 왔다. 내가 문을 연 서점 ‘당신의 강릉’의 첫 행사는 그를 모시는 것이었다. ‘교사는 어떠한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라는 제목으로 교사인 이원재 작가도 함께 강원도 지역의 학생, 학부모, 교사 등과 만났다. 그는 바다를 보고 하루 숙박하고 다음날 돌아갔다. 얼마 전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엊그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정부에 부분 개각이 있었는데 새 교육부 장관에 34살의 청년 가브리엘 아탈이 기용됐습니다. 그는 동성결혼자이기도 합니다. (…)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네요.”

강릉에서 진행했던 북토크에서 청중이 이원재 작가에게 물었다. 당신이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40살 이원재 작가는 답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대학 서열화를 멈추고 학제에 따른 n분의 1로 재편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의 재편보다도 40살 평교사 이원재씨의 교육부 장관 임용이라는 것이 더욱 요원할 일이 아닐까. 그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그럴 리가 없는 일을 전제했기 때문이다. 상상 속의 말들을 꺼내는 것은 가볍고 쉬운 일이다.

“아, 선생님. 34살 청년이 교육부 장관이라니요. 저희가 그날 농담처럼 했던 39살 이원재 선생 교육부 장관론이 저기에서는 현실이 됐네요.”

홍세화 선생이 이번에는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언젠가 찍은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이라고 했다. 나는 외국의 해변을 본 일이 없어 기대했던 것처럼 물의 색이 예쁘지도 않고 해변의 경관도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강문해변, 안목해변, 집 근처의 해변이 노르망디보다 낫다는 걸 알았다.

“해변에서 책 읽기: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마을 ‘La Veules les Roses’(뵐르 강변의 장미 마을) 풍경입니다. 제 눈을 끈 것은 해변에 설치된 임시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 청년, 어른의 모습이었어요.”

그 별것 없어 보이는 노르망디 해변의 좋은 자리에는, 간이 도서관 같은 것이 있었다. 컨테이너 두어 개를 붙여 만든 것처럼 볼품없기는 했으나 사람들은 그 앞 마당에서 햇볕을 쬐면서 캠핑의자 같은 데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해변에 카페나 술집이나 편의점이나 횟집 말고, 도서관이라는 게 있구나. 그리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책이라는 것을 읽는구나.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엔 도서관이 있다. 내가 굳이 책을 싸 가지 않아도 해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대한민국, 굳이 도서관을 찾아가야 하고 그나마 있는 도서관에 대한 지원도 줄이겠다는 목소리가 늘 들려오는 나라. 그러나 사람들이 몰릴 만한 곳이면 거기가 어디든 임시로라도 도서관을 설치해 사람들에게 읽을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을 자연스레 만들어 두는 나라가 있다. 나는 홍세화 선생에게 “저게…. 선진국이군요” 하고 답했다.

강릉에 살며 해변에 자주 간다. 바다는 예쁘고 해변에선 필요한 무엇이든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읽는 해변’이란 네이밍을 상상해 본 일은 없었다. 보여주기 위해 무언가 짓고 책을 가져다 두고 사업으로 소개하고, 그런 것 말고, 어느 해변에 가든 작은 임시도서관이 있어 거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빌려 읽는 일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됐으면 한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책이 있으면 좋겠다. 읽고 안 읽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어디에든 책이 있는 환경을 조성해 두는 게 선진국이고 선진도시 아닌가. 그래야 평교사 출신의 30대 교육부 장관이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가 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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