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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이 부모는 ‘미친개’의 제자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지난 7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건물 곳곳에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며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가 붙어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7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건물 곳곳에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며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가 붙어 있다. 성동훈 기자

작년에 동생 가족이 휴가로 귀국했을 때 마침 선거 중이었다. 재산 축소신고로 지탄받던 후보에 대한 뉴스를 지켜보던 아홉 살 조카가 “저 후보자가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물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행동이 나쁘지. 고모는 정직한 후보를 선택하려고 해”라고 답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분 이전에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를 먼저 알려주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였다.

세상 경험이 쌓일수록 알게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완벽하게 좋거나 나쁘기보다는 상황과 입장, 욕망에 따라 다른 행위를 선택한다는 것. 그러나 보편적 선악의 행위와 상호 영향력, 연쇄적 파급효과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고민할수록 더 나은 선택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룰과 예의를 배우는 과정보다는, 타인을 속성으로 규정하고 구분짓는 법을 먼저 습득하게 만드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근현대 100년사가 “반(反)교육의 역사”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일제 치하에서는 ‘식민지 교육’으로 자존감을 잃고 사대주의에 물들었고, 분단 이후는 극단적 좌우 논리의 ‘반공 교육’으로 다름의 조화보다는 절대선과 절대악의 편가르기와 혐오를 배웠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전, 산업 역군으로서의 효용성과 배금주의 시대의 스펙 향상이 궁극의 교육 목표가 되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과 공생의 가치를 가르쳐야 할 학교가 오히려 굴복할 강자와 무시받아 당연한 약자를 가르는 검투사 훈련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꽃 같은 젊음의 교사들이 목숨을 끊고, 오랜 시간 학부모들의 갑질 폭력에 시달려 온 교사들이 폭염에 거리로 나섰다. 어떤 이들은 “내 새끼 지상주의”가 문제라며 부모들을 탓하고, 어떤 이들은 비대해진 학생인권의 문제니 다시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그게 다일까. 진실로 내 새끼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라면, 강력한 교권의 문제라면, 그토록 오랜 시간 교사들의 폭력과 차별에 무방비로 방치된 학생들이 넘쳐나던 사회는 어떻게 진단해야 할까. 자녀의 행복보다 성공을 갈망하는 사회는?

학교마다 있던 교사 별명 1위가 ‘미친개’라는 조사가 있다. 광년이, 독사, 피바다에 돈만 밝힌다는 거지새끼, 바리캉과 맛세이, 여학생들의 신체를 더듬던 변태가 활보했다. 학교인지 조폭인지 혼란하다. 가난하거나 성적이 낮은 학생은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담임에게 복수했을 때 많은 이들이 통쾌함을 느낀 이유는 집단적 유사경험 때문이다. 스승의 기억이 빈약하고 불신만 가득한 학생들이 학부모가 되었고, 전대의 상당수 교사들이 저지른 악업이 거울처럼 부메랑으로 대물림되는 중이다. 폭력의 주체가 오갈 뿐 학교가 학교가 아닌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폭력교사도 갑질부모도 대책 없는 금쪽이들도 철학 없는 교육, 길 잃은 무한경쟁 사회와 남 탓주의의 결과물이자 상호 악영향의 주체이지 근본 원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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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 한신대 교수

침몰 직전의 교육환경과 오랜 불신의 고리를 쉽게 끊기는 어렵겠지만 샛길은 없어 보인다. 당장의 세심한 제도정비는 중요하다. 그러나 아군과 적군의 편가르기를 배우기 전에 나와 타인의 차이를 이해하는 교육, 나쁜 사람 이전에 나쁜 행위가 먼저 있고 나쁜 행위는 나부터 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교육, 나만 행복해서는 결코 행복한 세상이 오지 않는다는 당연한 진리를 인식시키고 경쟁보다는 협력과 대안을 소통하는 교육이 없다면 잠시의 미봉책에 불과하다. 교권은 학교가 학교답고 교육이 교육다운 모습을 갖출 때, 느리지만 자연스럽고 올곧게 세워지는 신뢰의 결과물이다. 이조차 부모나 학생과의 제로섬 경쟁 쟁취물로 보는 시각이 바로 반(反)교육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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