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광 사회에디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기업은 부의 축적에 몰두한다. 이 과정에서 인류의 소중한 환경자산은 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환경파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왜 내 재산권을 침해하느냐”는 반박이 앞서기도 한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도 하나의 개체일 뿐인데 동물·식물·바다 등 환경의 존재 자체에 대한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한대광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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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에 ‘환경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국민도 드물다. 1987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환경권이 명문화됐다. 헌법 35조 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2항은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이미 환경권에 대한 다양한 법적 판결까지 나와 있다.

네덜란드 환경단체인 우르헨다 재단은 2013년 “정부가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25~40% 감축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는 기후변화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당시) 정부 목표였던 ‘2020년까지 온실가스 20% 감축’은 기후위기 대응에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네덜란드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그만큼 줄인다면, 다른 나라들이 오히려 온실가스를 더 배출할 수도 있다’는 반박 논리를 폈다. 소송 제기 7년 만인 2019년 12월20일 네덜란드 대법원은 “모든 국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자기 몫’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면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기후변화를 막기에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4월29일 연방정부의 기후변화 대응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고, 2030년 이후에는 보다 긴밀한 대응이 필요함에도 구체적 방안이 부족하다면서 “헌법과 합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도 환경권에 대한 법적 판단이 시작됐다. 미국 몬태나주 법원은 지난 8월14일(현지시간) “몬태나주에서 화석연료 정책을 승인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각국 법원은 이처럼 환경권에 대해 ‘인간이 깨끗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환경권은 인간의 권리만이 아니다.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시했다. 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법적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에콰도르는 헌법에 근거해 강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공사를 불허하기도 했다. 자연의 권리까지 보장하는 헌법과 법률은 볼리비아, 뉴질랜드, 방글라데시,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 파나마 등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아직 환경권에 대한 법적 판단이 분명치 않다. 2020년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이 정부와 국회의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청소년들의 생명권·환경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2021년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로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소원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페인트 시위’를 벌인 청년 기후활동가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조만간 나올 전망이어서 관심이 크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소속 활동가 2명은 2021년 석탄발전을 반대한다며 경기 성남시 두산에너빌리티(전 두산중공업) 건물 앞 조형물에 녹색 페인트를 뿌리고 시위를 벌였다. 1·2심 재판부는 ‘공익 활동이라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유죄 판결을 했다.

이 사건에 대해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까지 나섰다. ‘지구법학자’인 박 교수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냈고 활동가를 옹호했다. ‘지구법’은 인간, 비인간 존재, 생태계가 한데 어우러진 지구 공동체 속에 인간이 속해 있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인간 중심의 법체계를 ‘지구 중심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 교수는 두산에너빌리티가 기후위기의 주범인 석탄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행위가 지구 생명공동체의 공동선을 해친다는 입장이다. 그는 시위를 벌인 두 활동가의 행위는 지구 공동선에 대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자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에 형사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세계적인 환경권 판결 추세를 어떻게 반영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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