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안, 이래도 좋은가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현대 국가는 시민의 경제생활과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현대 국가가 그와 같은 기능의 수행을 위해 재원을 쓰고 거두는 내역이 곧 정부예산이다. 회계연도 내 정부 정책 목표는 그렇게 예산에 반영된다. 그런데 정책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프로그램(하나의 정책 목표에 대응하는 여러 정책 사업들의 집합)’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개별 사업마다 지출 비중은 달리 배정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어떤 정책 목표를 공표하든 예산과 관련한 권한이 기획재정부에 주어진 실정에서는 거꾸로 예산이 길을 터주지 않으면 해당 정책 목표의 실제 구현이 불가능한 이유다. 그렇게 프로그램별 예산 비중의 변화는 정부의 정책 의도를 드러낸다. 지난 1일 국회에 제출된 2024년도 정부예산안에 관심을 갖게 되는 배경이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 대해 총지출 증가율을 2005년 이후 최저수준으로 묶으면서도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재정 건전화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양심 있는 경제학자라면 총지출이 18조2000억원 늘어나는 반면 총수입은 13조6000억원 줄어들어 재정적자 폭이 커지는 현상을 두고 재정 건전화라고 평할 수는 없다. 도대체 누가 이 수치들을 놓고 재정 건전화라고 우길 수 있단 말인가.

툭하면 외치는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정반대로 세계에서 유독 우리 정부만 기준으로 쓰는 관리재정수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만 봐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재정중독’이라고 탓하는 직전 정부에서는 그 비율이 2018~2019년에는 평균 1.7% 적자였고, 코로나19 위기로 통상적인 재정운영이 불가능했던 2020~2021년에는 평균 5.1% 적자였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진정된 지난해에는 윤석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으로 적자가 5.4%까지 늘었다. 올해는 세수 결손이 역대 최대인 59조원에 달한다니 연말까지 적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두고 볼 일이다. 한마디로 재정총량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여태까지의 행보는 재정 건전화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여당이 관리재정수지를 3% 적자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의 도입에 그토록 목매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년 예산안부터 도 기준치를 초과해 3.9% 적자를 책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아무리 올해 경제전망을 ‘상저하고’로 나 홀로 외친들 부자 감세로 향후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까지는 어쩔 수 없을 터이다. 부자 감세로도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무당 경제학’의 거짓말을 수없이 설파해도, ‘어퍼컷’을 수없이 날려도 소용없다.

그런데 그런 사정이 2025년이나 그 후라고 달라지겠는가. 정부·여당이 부자 감세를 지금처럼 정책 기조로 유지하는 한, 재정준칙은 결국 스스로 물 건너보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정부는 최소한의 일관성이라도 갖추려면 부자 감세와 재정준칙,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버려야 한다. 둘 다 버리는 편이 최선이고, 그것이 진보의 길이다. 그 점에서는 “증세는 비현실적”이라고 못 박고, 틈만 나면 재정준칙에 동의해주려고 눈치 보는 제1야당도 희망 없기는 매한가지다.

정부의 이번 예산안은 재정총량뿐만 아니라 분야별 재원 배분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실은 지방재정조정제도에 의한 지방 이전 재원이 15조원 이상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는 부자 감세 때문에 내년 세수가 올해보다도 더 줄어든다는 전망의 결과다. 그렇게 되면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의 일반재원이 감소하는데 그것은 다시 교육 및 지방행정과 관련된 현대 국가의 기능 공백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공산이 크다. 혹시 전국을 ‘졸라맨’으로 쥐어짜서라도 수도권 일부 부자 동네 표밭의 배부터 불리고 보자는 속셈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연구·개발(R&D) 지원을 과도하게 줄이면서 보건의료 관련 R&D 및 중소기업 기술개발 예산이 상당 부분 삭감되었으며,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탄소중립 기반 구축 프로그램이 대폭 감액된 사실도 주목된다. 재생에너지 관련 사업과 지난 정부에서 중시했던 한국형 실업부조 관련 예산도 크게 줄었다. 반면 증액된 예산 중에는 공적연금 급여처럼 고령인구 증가에 따라 자동적으로 늘어난 의무 지출이 많아 보인다. 그마저도 연금 ‘개혁’을 빙자한 소득대체율 인하로 지출 축소가 추진되고 있지만 말이다.

2024년도 예산안에 드러난 정부의 이 같은 정책 방향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다. 기후변화 대응, 첨단기술을 둘러싼 세계적 경쟁, 그리고 불평등 완화처럼 어려운 시대적 과제에 직면한 대전환의 시기에 말이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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