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마포구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러 지하철이 연장되고 내가 사는 망원동 인근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메트로폴리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강원도 원주에 있었다. 잠시 머물 것으로 알았으나 학교와 직장 때문에 거기에서 20여년을 살았다.
내가 다닌 대학은 시내와는 30분 정도 떨어진 데 있었다. 30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터미널이라든가 중앙시장이라든가 하는 중심가가 나왔다. 내가 영화관에 간 건 2003년 겨울, 대학에 와서 첫 연애를 시작했던 때였다. A는 외지 사람들이 원주민이라고도 불렀던 원주 사람이었다. 시내의 영화관 앞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기 위해 그와 만났다. 추운 날이었다. 나는 영화관이 어디인지도 몰랐기에 그가 내리라고 하는 정류장 앞에 내렸다. 영화관의 이름은 ‘아카데미 극장’, 표를 예매할 방법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런 건 필요 없다는 그의 말에 현장에서 표를 구매했을 것이다.
서울 마포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가면 나오는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참 많이 달랐던 기억이다. 표를 사고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무언가 시간여행을 시작하는 듯도 했고, 들어가서 좌석을 찾아 앉자 그것이 마치 관광버스의 의자 같기도 했고, 의자 뒤엔 광고로 된 천 같은 게 붙어 있었던 것도 같다.
영화관엔 절반 정도 사람이 차 있었다. 영화를 보던 중 앞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익숙한, 아니 영화관에선 익숙해서는 안 될 냄새였다. 그래 이건 담배 연기다. 놀란 표정으로 옆의 A를 바라보았다. 그도 나처럼 놀랐는지 아니면 이런 건 익숙하다는 반응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누군가에게 그 일화를 전하자 그는 그건 좀 선을 넘은 것 같지만 자신의 고향 영화관에서는 상영 도중 국밥을 시켜 먹는 사람도 보았다고 했다. 담배든 국밥이든, 그게 영화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인가. 다만 이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낭만과 야만의 그 어느 사이, 지나간 시절의 한 기억이겠다.
1963년 문을 연 원주 아카데미 극장은 원주에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들어서며 2006년 폐관했고 이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원주에 있던 단관극장 5개 중 4개가 철거되었고 이제 아카데미 극장만 남았다.
우리나라에서 그 원형이 보존된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 하나쯤은 남겨두어도 괜찮지 않겠나, 근대 문화시설로서의 가치도 충분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원주시는 올해 아카데미 극장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짓겠다고 공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으나 추석 전까지 철거하겠다는 입장이다.
극장 앞엔 철거를 반대하는 텐트가 들어섰고 ‘아카데미 친구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십명의 원주 시민들이 돌아가며 텐트를 지키고 있다. 원주에서 20년을 살았으니 내가 아는 얼굴들도 있는데, 그들은 지금까지 시위 현장에 한 번도 나가 본 일도 없는, 내가 아는 가장 목소리가 작고 선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아카데미 극장의 보존이고, 시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의회의 결정이 아니라 원주 시민들에게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치자는 게 전부다.
나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랑하는 망원동에 망리단길이 들어서는 걸 보았다. 개발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지속과 치유가 되기도 하고 단절과 상처가 되기도 한다. 적어도 이 공간 하나쯤 남겨 놓으면 하는 바람을, 나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