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지역균형발전을 원하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의 화이부동] 우리는 정말 지역균형발전을 원하나

교육경제학을 연구하는 한밭대 교수 남기곤은 2018년 ‘경제학 연구’라는 학술지에 “ ‘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NURI) 사업’은 성공적이었는가?: 졸업생의 노동시장 성과에 대한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아주 좋은 논문이다. 지난 9월13일 중앙일보는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최근 통계까지 곁들이면서 “ ‘지방대 취업률 높이기’ 역설…되레 수도권으로 이탈 늘렸다”라는 제목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남기곤은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목표를 ‘취업률 향상’에 두는, 관행이 된 정책 방향이 올바른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까지의 관행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수하게 양성한 근로자일수록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버리는 역설을 지적하면서 “지방대에서 우수 인재를 양성하면 이들이 지역에 진출해 지역 발전이 촉진될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가 소개한,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2018~2020년 대졸자의 진출 직장을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2020년 기준 수도권 대학 졸업자가 취업 시 같은 지역에 머무른 비율이 84.5%인 데 비해 비수도권은 현저히 낮았다. 강원이 23.5%로 가장 낮았고, 대전·세종·충청 34.7%, 대구·경북 44.9%, 광주·호남 53.1%, 제주 56.4%, 부산·울산·경남 59.5% 순이었다. 연구진은 “대학은 지역 취업을 강조하지만, 지역의 취업처가 학생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착잡했다. 기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을 나를 포함한 많은 지방대 교수들은 오래전부터 당연한 상식처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지역 취업을 강조하는 대학이 있다니 오히려 놀랍기까지 하다. 지역 내에 일할 곳이 꽤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 지역이 얼마나 될까? 일할 곳이 있건 없건 공공연하게 “지역에 남지 말고 서울로 가라”고 외치는 교수들도 많고, 또 그런 교수가 학생을 더 생각하는 교수로 여겨지는 지역도 있기 때문이다.

착잡해할 게 아니라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해야 할 게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게 의외로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주제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지역의 이익과 지역민의 이익이 같을 걸로 생각하지만, 그게 꼭 그렇진 않다는 데에 지방의 비극이 있다. 이른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때문이다.

지방 비극은 ‘구성의 오류’ 때문

37년 만의 대풍(大豊)이었던 2013년 여름과 가을 농민들의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던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농사를 잘 지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농민의 기쁨이자 보람이지만, 모든 농민이 다 농사를 잘 짓는다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 모든 농민들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 당시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 고추·마늘 등 농작물의 수확을 포기한 채 밭을 갈아엎는 농민들이 많았다.

이걸 가리켜 구성의 오류라고 한다. 구성의 오류는 각 개인의 합리적 행동의 총합이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불황에 저축을 늘리면 개인은 안전감을 느끼겠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하면 소비가 줄어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1955년판 <경제학 원론>에서 내린 간결한 정의에 따르자면, “구성의 오류는 부분이 참이라는 이유만으로 전체를 참으로 간주하는 오류다”.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개념이지만, 당시 정책 등과 같은 현실적인 분야에선 완전히 외면됐다. 오죽하면 칼럼니스트이자 대중과 소통하는 공공경제학자이기도 했던 월터 리프먼이 1963년 칼럼을 통해 구성의 오류를 지적하며 재정정책에서 사람들에게 이걸 이해시키는 데엔 한 세대가 걸릴 것이라고 했을까? 리프먼이 그런 개탄을 한 지 한 세대를 넘어 거의 두 세대가 지났으니, 이젠 재정정책을 비롯한 모든 정책 분야에서 ‘구성의 오류’는 경계 대상이 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론 따로, 현실 따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지역의 이익과 지역민의 이익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예가 한국인의 세속적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이다. 그간 지방은 개천을 자처하면서 ‘용 키우기’를 지역인재 육성 전략이자 지역발전 전략으로 삼아왔다. 용은 어디에서 크나? 무조건 서울이다! 그래서 서울 명문대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고교에 장려금을 주고 지방자치단체별로 서울에 학숙을 지어 각종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유능한 학생을 서울로 많이 보내기 위해 발버둥 쳐 왔다.

사실상 ‘지방대학 죽이기’를 지역인재 육성 전략이자 지역발전 전략으로 삼은 셈인데, 그게 어이없다고 웃거나 화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심지어 서민층 학부모마저도 자식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는 꿈을 꾸기에 그런 지역발전 전략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꿈은 당연하거니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건 각 가족 차원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지역의 공적 지원과 장려까지 해야 하느냐는 게 쟁점이다.

우리는 개천에서 더 많은 용이 나오는 걸 진보로 생각할 뿐, 개천에 남을 절대 다수의 미꾸라지들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없다. 미꾸라지들의 돈까지 들여서 용을 키우고, 그렇게 큰 용들이 ‘서울시민’의 신분으로 권력을 갖고 ‘개천 죽이기’를 해도 단지 그들이 자기 개천 출신이라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한동안 이런 모순을 비판했지만, 이젠 절대 다수가 원하거나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존중하는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

연고주의가 지역발전 큰 걸림돌

다만 겸허하고 온건한 자세로 이런 제안은 하고 싶다. 앞으로 ‘지역발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엔 발전의 대상이 ‘가족’인지 ‘지역’인지를 분명히 하자. 불필요한 실망과 좌절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역의 유능한 인재가 서울에 취업해 출세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는 건 그 인재가 속한 가족의 큰 기쁨이다. 그런 가족이 많아질수록 지역민들의 행복도도 올라가겠지만, 문제는 그로 인한 지역 대학의 낙후 또는 황폐화로 인해 지역 자체의 발전 가능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지난 반세기 넘게 지방에서 벌어진 일이다. 만약 우리가 지역이라는 지리적 공간을 초월해 가족 중심의 지역발전을 하겠다고 들면, 현 방식은 문제 될 게 전혀 없다. 오히려 정말 좋은 방식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게 옳을 것이다.

가족 중심의 지역발전 전략은 ‘개천에서 난 용들’을 찬양하고 우대한다. 심지어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시민임에도 부모의 고향까지 따져가면서 같은 지역민으로 간주한다. 이들 중 일부는 서울에서 출세할 만큼 출세한 후에 고향을 찾아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자리에 큰 관심을 보인다. 물론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고향에 대한 보은의 차원에서 그러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평생 지역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에겐 고향을 위해 일할 공직의 기회마저 빼앗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가족 중심의 지역발전 전략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사람들을 암묵적으로나마 차별하기 마련이다. 거의 평생 특정 지역에서 살아왔고, 그 지역에서 죽을 생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고향은 다른 지역이라면 이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외지인’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 서울에서 살았을지라도 아버지, 심지어 할아버지의 고향이 그 지역이면 이 사람은 그 지역민으로 대접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하겠는가. 맞다. 무시하고 넘어가도 될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정작 문제는 그런 혈연·지연 중심의 연고주의적 사고방식이 일상적 삶을 지배하면서 키워지는 배타성이 지역발전과 혁신의 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다. 개발독재 시대 이후에 전개된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전제로 살펴보자. 다양성이 없거나 다양성을 폄하하는 곳에서 발전과 혁신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누가 와서 살건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아무리 못살더라도 그 지역이 고향인 사람들만을 위한 지역을 만들기를 원하는가? 우리는, 특히 지방민은 정말 지역균형발전을 원하나? 이제 모든 지역이 지역발전을 거론할 때에 미리 답해야 할 질문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