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거리와 장미다방체

이광표 서원대 교수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안내판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안내판

“7080 쎈-세이숀 추억의 거리가 완전히 새로워졌읍니다. 그랜드 오픈 뉴-타잎.”

올해 5월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앞 담장에 이런 문구의 홍보안내판이 걸렸다. 언뜻 보아도 1970~19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디자인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야외전시장인 추억의 거리를 다시 꾸몄다. 북촌초등학교, 근대화수퍼, 화개이발관, 약속다방, 스타의상실, 종합전파사, 장수탕 등 1970~1980년대에 초점을 맞춰 서울의 골목 풍경을 재현한 것이다. 공간도 흥미로웠지만 그 못지않게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브로슈어와 안내판이었다. 옛날 분위기의 글씨체와 옛날 철자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970~1980년대 간판과 기존의 여러 글씨체를 참고해 이 같은 글씨체를 디자인했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젊은층에겐 낯섦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최근 옛날 글씨체가 은근히 인기를 끌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경우처럼 상황에 따라 몇개의 글자를 옛날 분위기로 디자인한 것도 있고, 아예 한 벌의 폰트로 만든 것도 있다. 옛글씨체 폰트로는 격동명조체, 장미다방체, 옛날목욕탕체, 파도소리체, 을지로체, 응답하라체, 태극당체, 한나체, 도현체 등이 있다. 여러 폰트 가운데 옛날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 장미다방체, 옛날목욕탕체, 을지로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폰트들은 그 이름부터 사람들을 확 사로잡는다.

가장 감각적인 것은 장미다방체다. 장미다방이라고 하니 레트로 분위기가 장미향처럼 짙게 풍긴다. 40~50년 전 장미다방은 청춘의 공간, 연애의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며 성냥으로 사랑탑을 쌓던 여러 청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성냥 사랑탑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지곤 했지만. 이참에 인터넷 포털에서 장미다방을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전국에서 30곳 정도 검색이 된다. 전국 곳곳에 아직도 장미다방이 건재하다니, 놀랍다. 장미다방체는 어딘가에서 한 번은 본 듯하다. 옛날 다방 간판이나 성냥갑에서 보았던 글씨체였던가. 그래서인지 장미다방체는 친숙하면서도 낭만적이다.

옛날목욕탕체도 호감이 간다. 몇달 전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를 관람하면서 목욕탕(장수탕)에 들어가 보았다. 젊은 아빠가 초등생 아들의 질문에 열심히 답하고 있었다. 아이에겐 꽤나 신기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수십 년 전엔 공중목욕탕에 가야만 제대로 목욕을 할 수 있었다는 걸 젊은 아빠는 아이에게 잘 설명해주었을까. 그 시절, 공중목욕탕에 때를 밀러 가는 건 큰 행사였다. 그래서인지 옛날목욕탕체는 적당히 우직하고 적당히 촌스럽다. 각이 진 글자의 획 하나하나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을지로체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을지로체는 서울 을지로의 옛날 페인트 간판 글씨를 체계화해 폰트로 만든 것이다. 지금은 문 닫은 을지면옥 간판을 비롯해 수많은 페인트 간판들이 을지로체의 토대가 되었다. 을지로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 생업의 현장에서 만났던 페인트 간판 글씨. 지금도 을지로에선 이따금 이런 글씨체 간판을 만날 수 있다. 페인트 글씨의 묘한 매력과 힘. 그건 을지로라고 하는 노동과 생업 현장의 힘일 것이다.

이 밖에 파도소리체, 격동명조체, 응답하라체도 있지만 내겐 앞서 언급한 글씨체가 더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여러모로 1970~1980년대 분위기를 잘 담아냈기 때문일 테다.

장미다방체는 낭만적이고 애틋하다. 옛날목욕탕체는 우직하고 소박하다. 을지로체는 생명력 넘치면서도 유연하다. 그렇다면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안내판 글씨는 어떨까. 한껏 멋을 낸 1970~1980년대의 멋쟁이 패션 같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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