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 829GP, 문화유산과 군사시설 간극

2018년 9월19일 남북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를 체결했다. 그 일환으로 우리 정부와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내 최전방 감시초소(GP)를 시범 철수하기로 했다. 시범 철거 대상은 상호 1㎞ 거리 이내에 있는 남쪽 GP 11곳과 북쪽 GP 11곳. 그러나 얼마 후 남북은 철거 대상 가운데 하나씩을 골라 보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 측 보존 대상은 강원도 고성 동부전선에 있는 최동북단 GP(829GP·사진). 북한 측 보존 대상은 중부전선의 까칠봉 GP. 나머지 20개는 모두 철거했다.

829GP는 1953년 군사정전협정 체결 직후 남측 지역에 처음 설치한 GP. 남측 GP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후 수차례 증개축을 거쳤으며 40~50여명의 병사들이 2개월 정도 근무할 수 있는 규모다. 북측 GP가 철거되기 전까지 북측 GP와 가장 가까운 거리(580m)에 위치했던 GP였다. DMZ의 여러 GP 가운데 역사성과 상징성이 가장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2018년 당시 보존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 군은 2018년 11월, 829GP에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했다. 남북화해와 평화의 상징물이 될 것이란 기대 속에 2019년 6월 829GP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한 북한이 2018년 철거했던 GP를 복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이에 맞서 우리 군당국도 829GP를 복원하기로 했다. 2018년 철거한 나머지 10개 GP는 북한군의 GP 복원 상황을 보며 맞대응할 계획이라고 한다.

829GP의 건물은 원래 그대로 남아 있다. 따라서 군당국이 말하는 “GP 복원”은 건물 복원이 아니라 기능 복원인 셈이다. 군당국이 829GP부터 복원하기로 한 것은 작전상 매우 중요한 동부전선 최동북단에 위치한 데다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병력과 장비를 투입하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엔 분단과 전쟁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철원 노동당사,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자유의 다리, 칠곡 왜관철교 등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829GP는 가장 생생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분단·전쟁 관련 문화유산이다. 829GP의 긴장감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여타 문화유산과 차원이 다르다.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어 귀순한 탈북민이 1년 만에 다시 월북하는 일이 829GP 인근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근대유산 건축물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그런데 카페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다. 근대건축물의 원래 용도나 맥락을 외면한 활용이기 때문이다. 카페나 전시 공간으로만 활용하다보니 해당 근대유산 건축물의 존재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적으로 지정된 옛 서울역(1925년)의 경우,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으로 전시 중심의 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이런저런 전시는 이뤄지고 있지만, 이곳이 열차를 타고 내린 그래서 우리네 무수한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는 점, 우리나라 최초의 레스토랑인 서울역 그릴이 있었다는 점 등등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고민과 성찰이 결여된, 너무 손쉬운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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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829GP에는 이제 병사가 다시 투입되고 장비가 배치된다. 근대유산 활용의 측면에서 보면, 카페나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기능을 되살린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군사시설로서의 GP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GP의 원래 기능을 회복한다는 것은 긴장의 고조를 의미한다. 이곳에서 자칫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엄혹한 현실이다.

근대유산으로서의 GP와 현재진행형 군사시설로서의 GP. 그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50년, 100년이 흐른 뒤 829GP는 어떤 존재로 남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