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의 ‘시차’와 ‘착시’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연금개혁 논의가 더디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재정계산 작업을 했으면 이를 토대로 정부는 명확한 개혁안을 제시하고 야당은 이와 대비되는 방안으로 정책 경쟁을 벌여야 하건만 정부는 방향만 제시하고 야당은 아예 자신의 개혁안이 없다. 상황이 이러니, 관심은 다음 관문인 국회 연금특위의 공론조사로 쏠린다.

공론화는 시민들의 집단 숙의를 거쳐 정제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다. 연금개혁처럼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보험료와 급여를 두고 즉자적 여론이 쉽게 형성되며, 게다가 제도가 복잡하여 일반 시민이 실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의제에서는 공론화 작업이 유의미하다. 시민들이 대표성을 부여받았다는 책임감을 지니면서 근거자료를 토대로 기존 여론 흐름에 휘둘리지 않는 학습과 토론, 판단을 하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주제에서도 공론화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재정에서 발생하는 ‘시차’와 이로 인한 해석의 ‘착시’ 때문이다. 우선 시차를 보자. 보통 사회보험은 보험료와 급여가 짝을 이룬다. 그런데 이 짝에서 두 항목의 효과가 나타나는 방식이 국민연금에선 독특하다. 다른 사회보험에선 보험료와 급여의 효과가 동시에 발휘된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보장성을 늘리면 바로 건강보험 재정의 수입과 지출도 함께 증가한다. 실제 매년 건강보험은 보장성 수준을 정하고 이에 맞추어 건강보험료를 책정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완전히 다르다. 보험료율과 급여를 동시에 높이면 국민연금법에서는 변화된 두 수치가 반영되겠지만 실제 재정 효과에는 상당한 시차가 발생한다. 보험료율 인상은 즉시 재정 수입을 늘린다. 만약 현행 보험료율 9%를 12%로 올리면 3%포인트만큼 수입이 증가한다. 반면 소득대체율은 인상해도 바로 지출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가입자의 계좌에서 인상된 소득대체율로 급여가 높게 계산될 뿐 실제 지출은 가입자가 은퇴할 때 비로소 진행된다. ‘더 내고 더 받는’ 개편안이 시행된다면, 지금 20세 가입자 경우 65세까지 45년간 국민연금 수입을 늘리지만(전반전), 이후부터 90세 사망까지는 25년간 지출만 증가시킨다(후반전, 평균 기대여명 반영 수치). 수입과 지출에서 시차가 무려 45년이다. 이에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기간으로 시야를 한정하면, 이 개편안은 수입을 늘리기만 하니 국민연금 재정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은퇴 후 급여 지출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결국 이 개편안이 국민연금 재정에 미치는 효과는 가입과 은퇴의 전체 기간 동안 수입과 지출을 합산해야 알 수 있다.

지난달, 국회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가 보험료율을 15%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로 유지하는 방안과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도 50%로 상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두 방안은 국민연금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민간자문위원장은 전자는 기금소진연도를 16년, 후자는 7년 연장한다고 재정안정 효과를 설명하였다. 전자는 수입만 증가하니 당연히 재정을 개선하겠지만 후자도 기금소진연도가 늦추어졌다고 재정안정 방안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 재정이 지닌 시차를 보아야 한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전망한 2055년 기금소진연도까지는 지금부터 32년 후다. ‘더 내고 더 받는’ 개편안에서 이 기간은 주로 보험료율 인상이 영향을 미치는 시기이므로 기금소진연도는 뒤로 늦추어진다. 그런데 기금소진 이후 소득대체율 인상분의 지출이 본격화된다. 당해 급여 지출을 보험료만으로 충당할 경우인 ‘부과방식 필요보험료율’이 현행 제도에서 최대 35%가 43% 수준으로 높아지고, 급여지출도 최대 GDP 9.5%에서 11.8%로 늘어난다. 기금소진연도가 몇년 뒤로 갔지만, 높아진 소득대체율로 인해 기금소진연도 이후에 미래세대 부담이 훨씬 무거워진다. 이처럼 국민연금 추계기간에서 전반전에 속해 있는 기금소진연도만 보고 재정효과를 평가하면 착시가 생긴다.

연금개혁을 다루는 언론 기사를 보면, 국민연금 재정에서 시차와 착시 문제를 거의 직시하지 않는다. 오로지 기금소진연도를 중심으로 재정을 평가하는 손쉬운 해석에 안주하고, 여기에는 이를 방조한 전문가들의 책임도 크다. 이 주제만이 아니다. 보장성에 대한 ‘평균’ 접근의 한계, 국민연금 재분배의 역진적 현실, 계층효과를 따지지 않는 국고지원론 등 심층 토론이 필요한 항목들이 많다. 모두 공론화 자리에서 시민들이 정면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들이다. 정치권이 회피하고 전문가들은 평행선만 달리는 연금개혁, 이제 시민들이 공론화 작업으로 길을 열어 주기 바란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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