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정책도 ‘엑스포 유치’처럼 실패할 텐가

김석 경제에디터

‘윤핵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윤심’ 김기현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총선까지 해외 일정을 최소화하기로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의 충격이 크긴 큰 모양이다. 정부·여당이 뭔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과정을 보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7월 유치위원회를 민관 합동으로 개편하면서 유치전에 가세한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많은 자원을 쏟아부었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33년 만에 삭감하면서도 대외원조(ODA) 예산은 45%나 늘렸다. 제3세계 표를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정상외교에는 올해 책정된 249억원에 예비비 329억원을 더해 578억원을 썼다.

기업도 총동원됐다. 지난 1년 반 동안 기업인들은 180여개국의 정상과 장관 등 고위급 인사 3000여명을 만났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개최한 회의만 1600차례가 넘는다고 한다. 부산 엑스포 민간위원장인 최태원 SK 회장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4대 그룹 회장이 직접 현장을 뛰었다. 기업인들이 이 기간 출장한 거리를 합하면 지구 495바퀴인 1989만㎞나 된다고 한다.

그 결과가 29 대 119의 참패였다. ‘박빙’ ‘2차 투표에서 역전’ 같은 전망들은 근거가 전혀 없는 허풍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엑스포 유치 실패 뒤 대국민 담화에서 “저희가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했다. 그걸 이제 알았나 싶다. 며칠 전 방한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윤 대통령에게 “‘아메리칸 파이’가 미국인들 사이에 다시 유행하게 만들어주셨다”고 말했다. 이런 인사치레를 윤 대통령은 그동안 곧이곧대로 믿어온 것 아닌가 싶다.

뒤늦게나마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상황 파악이 잘못된 것이 어디 엑스포 유치전뿐이겠는가. 이번 기회에 모든 정책을 재검토해볼 것을 권한다. 특히 에너지정책부터 살펴보면 좋겠다.

지금 세계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 화두다. 2014년부터 영국의 비영리기구 ‘클라이밋그룹’ 주도 아래 각국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캠페인이다. 애플·구글·볼보 등 RE100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적 대기업 400여곳은 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 목표를 협력기업에도 요구한다. 애플은 최근 공급망을 구성하는 기업들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기로 생산한 제품만 납품하라”고 통보했다. 애플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1년 기준 7.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OECD 평균인 31.3%에 비해 턱없이 낮다. 선진국을 따라가려면 갈 길이 바쁜데도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지난 7월 소형태양광 우대제도(한국형 FIT)를 폐지했고, 내년 산업통상자원부 전력기금 예산안에서 재생에너지 예산을 전년 대비 42%나 줄였다.

윤석열 정부는 대신 RE100의 대항마로 ‘무탄소에너지(CFE)’ 캠페인을 밀고 있다. ‘CF100’(무탄소에너지 100% 사용)으로도 부르는 캠페인이다.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만 조달해야 하는 RE100과 달리, 원자력·탄소포집·수소 등에 기반한 전기도 사용할 수 있어 한국에 유리하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며칠 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한국이 국제사회 압박을 피하기 위해 낯선 캠페인을 주창하고 있다며 비판 기사를 보도했을 정도다. RE100이 한국 정부 제안에 따라 원전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수정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참패로 끝난 엑스포 유치전과 비슷한 상황이다.

정부가 거꾸로 가는 사이 국내 태양광 산업은 무너지고 있다. 국내 최대 태양광 모듈 생산업체인 한화솔루션은 며칠 뒤 음성공장의 가동을 중단한다. 희망퇴직도 받는다. 중견기업인 신성이엔지의 태양광 제품 매출액은 반토막이 났다.

애플이 얘기한 2030년이면 RE100은 무역 장벽처럼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위기를 맞은 쪽은 총선을 앞둔 정부·여당 정도다. 하지만 국제 흐름에 대한 잘못된 판단은 온 나라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썩은 동아줄에 매달리지 말고, 하루빨리 방향을 바꿔야 한다.

김석 경제에디터

김석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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