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과 이준석, 누가 군만두만 먹게 될까

이용욱 정치에디터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 미래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가령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 화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타파, 고 김근태 전 의원의 민주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에게도 개인적 욕망은 있었을 터이나, 역풍을 감내하며 기득권과 맞섰기에 사후에도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인들은 그럴싸한 명분 뒤편에 개인적 욕망을 숨기게 마련이다. 부(富)를 얻거나, 명예를 얻거나, 혹은 둘 다 원하거나.

욕망의 정치를 나쁜 것이라고 폄하할 일은 아니다. 능력 있고, 생각 똑바른 정치인의 출세욕은 국가와 민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치인 자신의 비틀린 욕망을 발산하는 도구로 정치의 장을 활용할 때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복수, 한풀이 등이 정치를 지배하는 경우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분풀이는 또 다른 분풀이를 낳는다. 굳이 복수정치를 말하는 것은 현재 여권 풍경이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을 정치판으로 이끈 주요 동인 중 하나가 복수심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 주변에선 정치할 생각이 없던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와 대립하며 지지율이 올랐고, 이런 상황에서 정치 무대로 빨려들어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지지율 때문만일까. 검찰총장 윤석열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을 수사했다는 이유 등으로, 여권 인사들의 집중 공격을 당했다. 중재했어야 할 문재인 대통령은 방관했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 앙심을 품게 되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이 대권 도전 선언 기자회견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고 거친 말을 했을 때 이런 짐작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윤 대통령은 사사건건, 틈만 나면 문재인 정부를 향해 증오를 드러냈다. “정권을 못 가져왔으면 이 나라 어떻게 됐겠나 아찔하다”며 전 정부를 망하기 전 기업에 비유했고, 국정 어려움이 돌출할 때마다 전 정부 탓을 했다. 집권 2년이 다 되도록 전 정부 탓을 하는 것은 스스로 무능하다고 자랑하는 자충수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탓에 매달린 것은 원한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분노, 한풀이를 전제로 하면 대통령 언행이 설명된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툭하면 화를 내고, 60분 중 59분을 혼자 말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견제로 검찰총장 때 뜻대로 하지 못했던 인사권은 한풀이하듯 행사하고 있다. 정부 요직은 검찰식구들로 채워졌다. 모두가 어렵다고 했던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나 엑스포 유치전 승리를 자신했던 것도 이성이 분노에 가려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 실패로 낙인찍히고 배척당했던 친이계 출신 참모들도 윤 대통령의 복수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얄궂다. 윤 대통령 본인이 복수 대상이 된 것이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에게 내쳐진 이준석 전 대표는 윤 대통령 때리기에 모든 것을 건 듯하다. 양두구육(羊頭狗肉), 벌거벗은 임금님 등 윤 대통령에 대한 적대적 말들은 이 전 대표에게서 나왔다. 갈라치기와 비아냥 등 이준석 정치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적어도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날카롭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준석 신당은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먹고 자라났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복수와 분노를 에너지 삼아 집권한 윤 대통령이 권위적 통치로 복수 대상이 된 것은 아이러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검사들, 대통령실 출신 측근들에게 총선 공천에서 밀려날 의원들도 복수대열에 동참할지 모른다. 윤 대통령은 이제야 국정 무게를 실감하고 있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 보란 듯 성공하고 싶었겠지만 현실은 반대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내리꽂은 것은 윤 대통령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방증이다.

지독한 복수극인 <올드보이>는 15년 동안 사설감옥에 갇혀 군만두만 먹었던 오대수(최민식)와 오대수를 가둔 이우진(유지태)의 대결을 큰 줄기로 하고 있다. 갇혔던 자나 가둔 자나 각자 복수 명분은 있으나, 결말은 파국이다.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가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맞선 듯한 여권 풍경을 보며 이 작품이 떠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지지부진하면 이준석 신당은 점점 덩치를 키울 것이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패한 쪽은 여론의 감옥에 갇혀 평생 군만두만 먹게 되는 팔자가 될지 모른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여권의 혼돈은 한풀이 정치가 횡행하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용욱 정치에디터

<이용욱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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