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에 대한 잔인한 오해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의 화이부동] ‘지역정당’에 대한 잔인한 오해

(1) “한국의 지방선거 제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거대 양당에 의한, 거대 양당을 위한 지방선거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거대 양당의 공천을 받아야 지방의원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지방의원이 주민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천권자의 눈치를 본다.”(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하승수, <황해문화>, 2022년 가을)

(2)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OECD 국가에서는 이른바 ‘지역정당’이라는 정치조직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중략) 지역정당들은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대선 2차전’이니 하는 구호를 내걸지 않는다. 그런 구호는 중앙권력을 목적으로 하는 전국정당이 한다.”(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양준호, <황해문화>, 2022년 가을)

(3) “정당에 대한 군사정부의 국가주의적 규정이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는 거대 양당의 패권 유지에 그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 대가로 우리의 지방정치는 중앙을 향한 ‘민원정치’가 되어버렸다. (중략) 우리의 정치구조는 지방이 생존할 최소한의 정치적 활력의 공간조차 남겨놓지 않았다.”(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경향신문, 2022년 4월5일)

이상 소개한 세 가지 견해는 서울의 정치적 식민지로 전락한 지방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역정당이 인정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는데,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나? 아니면 수치로 여겨야 하나?

60년 넘게 시대착오적 차별

박원호는 우리 지방정치의 비극은 사실 우리의 정당법이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제3조)”고 선언한 순간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한국의 모든 정당들은 서울에 중앙당을 둔 전국정당만이 존재할 가치가 있으며, 이들만이 후보자들을 공천하고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민주주의적 정의감과 실천력이 강하고 뛰어난 데다 국민의 정치적 효능감마저 충만한 한국에서 그런 시대착오적인 차별이 60년 넘게 저질러져 왔다는 게 기이하지 않은가? 뒤늦게나마 지역정당 설립을 막고 있는 정당법에 대한 위헌소송이 제기되었는데, 그 결과 역시 기이했다.

지난 10월4일 헌법재판소는 정당법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심판에서 문제의 관련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위헌 결정을 위한 심판정족수인 6명을 채우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유남석·문형배·정정미 재판관은 “거대 양당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전국정당 조항은 지역정당이나 군소정당, 신생정당이 정치영역에 진입할 수 없도록 높은 장벽을 세우고 있다”며 “각 지역 현안에 대한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의 출현을 배제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차단할 위험이 있다”고 봤다. 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의 참여라는 정당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전국 규모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볼 수 없고 헌법이 전국 규모의 조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정당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지역적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특히 문제시되고 있다”며 “지역정당을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와 이게 합헌이야? 지역주의 정당으로 문제 일으키는 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지 지역의 풀뿌리 운동 하던 사람들이던가?”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말이 몹시 안타깝게 여겨졌다. 일부 관련 기사에 소개된 법률 전문가들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런 우려가 지역정당에 대한 잔인한 오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엉뚱하게도 셰익스피어의 명언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에 무엇이 있는가? 장미를 무엇이라 부르건 달콤한 향기는 여전하다.”

‘잔인한 오해’ 다시 생각해봐야

지역정당을 무엇이라 부르건 달라질 건 없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셰익스피어가 그 말을 한 취지는 이해하거니와 동의하지만, 정색을 하고 말하자면 그건 과학적으론 옳지 않은 생각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에드먼드 롤스 교수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사물의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연상 작용이 실제로 냄새를 느끼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미를 호박꽃이라고 부르면 덜 향기롭게 느껴지지만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물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면 냄새도 나아진다는 것이다.

지역정당은 ‘local party’를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특정지역에서 지지 기반을 갖고 지역문제 해결 내지 지역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 또는 정치 주체로서의 정당”이다(서원대 교수 조규호). 활동 무대가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지역정당일 뿐인데, 다수 한국인들의 뇌리엔 이미 지역정당이란 단어에 대한 강한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 정당 관련 기사에서 무작위로 발췌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용법을 감상해보자.

“호남과 영남 모두 하층으로부터 재벌까지 계급을 초월해 자신들의 지역정당을 지지하는 ‘초계급적 지역정당체제’가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무관하게 된 데에는 지역정당의 책임이 매우 크다.”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와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는 구별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호남의 이런 선택이 결과적으로 ‘지역정당 구조’의 한 축을 떠받쳐온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기존의 ‘영남당’과 ‘호남당’ 외에 추가적으로 ‘충청당’이나 ‘강원당’ 등 군소 지역정당들이 부상할 공산이 커진다.” “인구편차의 허용기준이 클수록 지역정당 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다.” “과거 자민련처럼 TK(대구·경북) 지역정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용법들은 전국정당임에도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정당들이 결과적으로 갖게 되는 성격을 비판적 의미로 평가한 것이다. 지방자치를 서울에서의 패권 경쟁의 도구로 악용하는 몹쓸 정치와 결별한다는 의미에서 쓰는 ‘지역정당’과는 정반대되는 현상임에도 일반 유권자들, 아니 심지어 헌법재판관들마저 그 중요한 차이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은 채 같은 이름에 휩쓸려버리는 ‘이미지 사고’를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윤왕희는 ‘한국에서 지역정당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2022)라는 논문에서 기존의 부정적 지역주의를 연상시킬 수 있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역정당’ 대신 ‘주민자치정당’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지역에서 ‘밥그릇(일자리)’을 만들기 위한 호구지책 오해(혐의)도 떨쳐내기 위해 주민자치정당에는 전국정당과 달리 국고보조금을 아예 지급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윤왕희의 선견지명에 새삼 놀라게 된다. 실제로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주민자치정당을 부정적·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차분하게 잘 생각해보자. 두 거대 전국정당이야말로 지금도 지역주의로 장사를 하는 정당이다. 지방언론의 주요 기사 제목만 살펴봐도 지방 정치권이 가장 신경쓰는 게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중앙 권력과의 관계다. 지역발전을 위한 창의력과 혁신은 아예 지역 의제에 오르지도 못한다. 중앙의 한정된 부와 자원의 배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역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정권장악 기여도, 이게 바로 지방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다. 주민자치정당은 바로 이런 행태에 정면 도전하는 풀뿌리운동이다.

나는 그 풀뿌리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헌재의 합헌 결정과 관련해 세 번 놀랐다. 첫째, 거대 양당의 망국적인 지역주의 정치에 정면 도전하는 운동에 지역주의 심화 가능성을 제기한 게 놀라웠다. 둘째, 거의 모든 언론이 관련 사설이나 칼럼조차 싣지 않을 정도로 이 결정의 의미를 외면하는 걸 보고 놀랐다. 셋째, 분노하거나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는 유권자들이 거의 없다는 게 놀라웠다. 지역정당 또는 주민자치정당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경계하는 게 좋겠지만 잔인한 오해만큼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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