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도 실력도 없는 여야의 저출생 대책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청년들의 삶을 옥죈 모든 것을
국가가 갈아엎겠다는 각오다

한국이 초저출산서 못 벗어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치에서 찾아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모처럼 의견의 일치를 봤다. 지난 18일 동시에 발표된 저출생 대책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선거용이기는 하지만, ‘막대한 예산만 쓰고 성과는 없다’는 비판과 함께 국민의 큰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정책이라 언론의 관심도 컸다. 결과는 ‘예상대로,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국민의힘은 배우자 출산휴가를 현행 10일에서 1개월(유급)로 늘려 의무화하고 육아휴직 급여 상한 인상, 연 5일 유급 자녀돌봄휴가, 육아동료수당, 여성가족부 폐지와 인구부 설치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신혼부부 가구당 자녀 수에 따른 1억원 대출과 탕감, 초등 이상 미성년 자녀 아동수당, 자녀 수에 따른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을 약속했다.

정책에 대한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복지 전문가나 시민의 의견으로 제시된 언론의 평가는 대개 필요한 것들이지만 큰 효과가 있겠냐, 예산은 어떻게 할 거냐 등등 긍정도 부정도 아닌 것들이었다. 어떤 정책으로도 현재의 초저출산 경향을 바꾸기 어렵고 어떤 정책이라도 써봐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뭐라도 하겠다는 주장을 반박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심각한 만큼 정책의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그동안 해왔던 정책을 약간 손질하는 정도로(국민의힘), 예산을 퍼부어서(민주) 해결될 문제라면 신문의 1·2면을 장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경향신문 1월19일자). 이미 다가온 고령화사회의 불안 속에서 국정을 책임지는 두 당의 태도는 안이함을 넘어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다.

국민의힘의 공약은 획기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제도 개선에 초점을 두어 급여와 지원금을 상향했다. 특히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와 의무화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여가부를 폐지하고 인구부를 신설하겠다는 대목에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노동시간 유연화를 약속했지만, 현 정부의 노동시간 연장 기조 속에서 실효성은 물론, 성차별적인 결과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공약도 걱정스럽다. 현금지원 중심의 정책은 지속성을 확신할 수 없지만 정책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 있다. 중요한 카드지만, 그것이 정책의 중심이 될 때 보육환경과 서비스의 질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현금지원 정책이 중상위층 가구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하위계층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철희 서울대 교수)도 있다. 지자체의 지원금이 출산율 증가를 가져왔다는 보고에 대해서는 해당 지자체의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르다. 정책의 효과를 과장하기 위한 의도들이 개입될 수 있어 현재 자료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이 현금지원으로 출산율을 높였다는 사례로 헝가리를 선전하고 있다. 출산을 약속한 이들에게 대출(baby-expecting loan)과 이자 면제를 해주거나, 다자녀 가구에 대출액 탕감 또는 평생 소득세 면제를 하고 자동차 구매 비용까지 지원해준다. 2명 이상 자녀 출산 시 대출액의 3분의 1, 3명 이상 출산 시 대출액 전체를 탕감해준다.

그렇다면 헝가리는 어떤 나라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성별 고용률 격차는 10%포인트가 넘고 임금 격차도 13.1%로 OECD 평균보다 크다. 정부 내각 중 여성 비율은 9.1%(OECD 평균 35.7%), 의회 내 여성 비율은 12.6%(OECD 평균 33.8%)로 OECD 국가 내 최하위 수준이며 한국보다도 낮다. 헝가리는 2010년 동유럽에 경제위기가 몰아닥친 당시 극우 포퓰리즘 정당 피데스가 집권했고, 이후 권위주의 정치를 계속해왔다. 정부는 성평등 부서를 인구 부서로 바꾸고 출산을 강요했다. 이에 대해 서구 학자들은 여성의 몸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비판해왔다.

국민의힘은 여가부를 폐지하고 인구부를 만들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헝가리 현금살포 정책과 똑같은 정책을 발표한다. 그런데 이들만 모르는 것일까? 한국의 초저출산은 출산의 행위주체인 여성과 남성이 경쟁과 차별,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그것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비관(悲觀)이 낳은 산물이라는 사실을.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이 주체들의 고용과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제도와 문화·관행을 바꾸고, 이런 ‘전복적인 변화’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삶을 옥죄어왔던 모든 것들을 국가가 앞장서서 갈아엎겠다는 각오다. 한국 사회가 초저출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치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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