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가 여성정책을 말하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다가오는 총선서 거대 양당은
남성 표 얻으려 전전긍긍하는데
여성 표 없이 승리할 수 있을까?

여성들은 여성정책에 투표할 것

3월8일은 ‘세계여성의날’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포용을 고무하라(#InspireInclusion)”라는 구호와 함께 성평등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하고, 성별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모든 여성이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실렸다.

이 사이트에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여성이 일하기에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나쁜 나라들”이란 제목 아래 2016년부터 2023년까지 29개국의 유리천장 지수가 제시됐다. 성별 임금격차, 여성 고용률, 여성 관리직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 12개 항목으로 산출되는 통계에서 한국은 부동의 29위, 꼴찌를 계속해왔다. 여성이 일하기에 가장 나쁜 나라인 것이다.

손흥민 선수도 여성과 장애 아동을 위한 토트넘 여성의날 기념행사에 참여했다는 보도가 무색하리만큼, 한국에서는 축하 의례가 적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없었고, 여성가족부 차관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인구위기 속에서 국가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라는 메시지를 내놨다. 산업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아이를 키우라는 1970년대 가부장적 개발국가 시대를 연상시키는 메시지다.

국민의힘은 별도 행사 없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히포시(HeForShe)’ 선언만 여성신문에 실었다. 경력단절 여성, 결혼이주 여성,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 여성들을 별도로 언급했을 뿐 여성의 지위는 과거에 비해 향상되었다는 자평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축하행사와 함께 보라색 넥타이를 맨 홍익표 원내대표의 인사가 있었지만, 이재명 대표의 축사는 없었다. 녹색정의당은 심상정 대표가 축하행사에 앞장섰다. 새로운미래 이낙연 대표는 여성정책을 발표했고 개혁신당 금태섭 최고위원은 반성 메시지를 냈다. 조국혁신당은 조국 대표와 영입인사들이 3·8 여성대회에서 함께 행진했다. “세계여성의날을 축하합니다”라는 신장식 변호사의 외침에 “그 평범한 한마디에 마음이 울컥했다”고 참가했던 지인은 말했다.

21대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9.1%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7일까지 거대 양당의 여성 공천 비율은 국민의힘 11.7%, 더불어민주당 16.5%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면 22대 국회에서 성 불균형이 개선되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2022년 5월 공직선거법 제47조 제4항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선거에서 여성 후보자 30% 이상 추천을 노력 사항에서 의무 사항으로 바꾸려는 결의안이 발의되었지만, 국민의힘의 반대로 무산됐다.

22대 총선과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점은 이런 것이다. 첫째, 지난 몇년간 정당지지도에서 국민의힘에 대한 여성의 인식은 노년층을 제외하곤 긍정보다 부정이 많았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밀어붙이는 대통령과 여당이 여성정책 부서뿐 아니라 여성정책 자체를 해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민의힘에는 여성 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둘째, 20~50대 여성이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가지고 더불어민주당을 더 지지해왔지만, 그들은 가둬놓은 집토끼가 아니다. 최근 공천 논란 이후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성별로 나눠보면, 남성의 지지율엔 큰 변화가 없다. 1월부터 3월 첫째 주까지 한국갤럽의 정례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29%에서 34% 사이에 머물러왔고 지속적으로 국민의힘에 비해 열세였다. 반면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32%에서 39% 사이를 오르내렸고, 1월엔 민주당 지지가 많았지만 2월 들어서는 국민의힘 지지율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지난주엔 국민의힘 지지율 39%, 민주당 32%로 크게 떨어졌다. 여성의 지지율 저하가 민주당 지지율 하락세를 견인했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셋째, 총선 후보자 공천에서 여성 비율을 늘리는 것만 전부가 아니다. 국가 의사결정기구에서 과소대표되어온 여성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질적인 차원을 포함한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성평등 수준을 높이려는 책임의식을 가진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현재의 후보자 중 이런 책임의식을 가진 여성들을 몇명이나 찾을 수 있을까?

거대 양당 모두 남성 표를 얻으려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성 표 없이 승리할 수 있을까? 최근 만난 청년 여성의 말이 떠오른다. “지지 정당은 있었지만, 지역에서 여성정책을 이야기하는 다른 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로 했다.” 누가 지금 여성정책을 말하고 있나? 여성들은 여성정책에 투표할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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