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법이 나아갈 옳은 방향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지난달 23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경제부총리는, 감세로 인해 대기업이 일차적 혜택을 보면 결국 고용을 창출해 노동자에게 득이 된다면서도 “그것이 낙수효과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부총리는 윤석열 정부 들어 “부자 감세를 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부자 감세나 낙수효과가 복잡하거나 신비로운 개념일 리 없다. 부유층이나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감세가 부자 감세이고 그 결과로 빈곤층이나 노동자도 득을 본다는 것이 낙수효과 아닌가. 부총리의 어설픈 궤변이 부끄럽다.

다행인 것은 일반 시민의 인식이 그런 궤변보다는 수준 높다는 사실이다. 그 점은 3월3일 발표된 참여연대의 조세재정정책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되었다. 조사 결과, 시민들 가운데 62%는 경제력에 걸맞게 세금 부담을 나누는 공정과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부자 감세라는 지적에는 36%만이 부총리와 의견이 같았고 낙수효과에 대해서는 59%가 부총리와 의견이 달랐다.

부자 감세를 밀어붙이며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모습은 일견 모순적이다. 세입이 줄면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기 쉬운 탓이다. 하지만 그것은 국가재정을 대하는 보수 정치의 관점에 충실한 것이기도 하다. 보수 정치로서는 자본가들과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벌이는 계급투쟁에서는 부자 감세로 줄어든 재정자원의 범위 내로 공동체의 필요에 따른 재정 소요를 제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다.

재정건전성이 강조되는 맥락은 그런 것이다. 국가도 가계와 똑같은 ‘예산제약’에 직면한다는 거짓말이 등장한다. 기존에 공공부문이 공급해온 서비스가 제한되기도 한다. 대신 민영화와 아웃소싱의 길이 열린다. 상품화되지 않았던 영역이 상품화되면서 자본의 가치 증식을 위한 무대가 된다. 돌봄도 에너지도 심지어는 연금도 예외가 아니다. 공동체의 생존은 점점 더 이윤과 축적의 불안정한 리듬에 내몰린다. 감세와 결부된 재정건전성은 가진 자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공동체의 지출을 억누르는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우리 재정 운영의 기본 골격인 국가재정법도 국가재정 운용 방향에 있어 재정건전성을 강조한다. 제1조부터 “건전재정의 기틀” 확립을 동 법의 목적으로 규정했고, 제7조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수립이나 제16조 예산 원칙에 대한 조항 등에서 정부가 재정건전성의 확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동 법은 또한 건전재정 유지를 위한 제도들도 제공한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요건 제한, 세계잉여금의 국가채무 상환 우선사용 의무화, 국가채무관리계획의 수립 의무화 등이 대표적 내용이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거의 지킨 적 없는 국세감면율 법정한도는 재정건전성을 지출 통제가 아니라 세입 기반 유지 측면에서 고려하는 점 때문에 별도의 의의를 가진다.

기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적극재정의 근거가 결여되어 있고 재정건전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편향이 있어 재정운용상의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뒷받침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가재정법은 2020년 법 개정 과정에서 제1조 목적 조항이 부분적으로 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정건전성과 당시 새로 포함된 “재정운용의 공공성”이라는 두 목적은 어디까지나 전자에 강조점이 주어진 채 병렬적으로 나열되었을 뿐이며 후자의 실체적 내용이 불분명한 약점이 있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조시 비벤스 박사는 재정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완전고용의 달성과 불평등의 완화에 있으며 그와 같은 사회경제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재정의 ‘책임성’ 담론이 복원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재정의 책임성이란 국가재정은 국민경제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원칙에 다름 아니다. 재정정책을 규범적으로 규율하려는 국가재정법은 법 개정을 통해 재정운용의 공공성이 갖는 의미를 재정의 책임성과 재정민주주의의 두 방향으로 확장하고 국가재정 관리에 있어 재정의 책임성과 지속 가능성 간 조화를 기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오늘 한국경제는 다면적 불확실성과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만성적인 유효수요 부족이 야기한 회복 지체와 심각한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난제에 제대로 손써보지도 못한 채 좌초하는 중이다. 저출생 대응과 에너지 전환 과제에 있어서는 한숨만 쉬는 실정이다. 늦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더 적극적인 재정 역할이 절실하다. 재정건전성의 낡은 도그마로부터의 탈출과 재정의 책임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도 필수적이다. 그 길이 앞으로 국가재정법이 나아갈 옳은 방향이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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