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시인
[임의진의 시골편지]부럽지가 않어~

장맛비인가 꾸물꾸물하덩만 반짝 볕이 나더니 벚꽃이 만개했다. 장독대 장이 떨어졌나 매우 심심하고 시시하던 차였어. 맘이 설레고 쿵쾅거리네. 벚꽃이 피면 인생들 얼굴도 따라서 핀다. 벚꽃 피는 날 벗들 모여 노는 걸 ‘벚꽃놀이’라 하지. 꽃놀이를 누가 마다하리오. 엊그젠 섬진강 모래톱 제월섬에 들러 만보기를 켰다. 2000보까지 살짝 보다가 말았어. 요새 그 숫자가 때아닌 밀레니엄 소동만 같아라. 2000년 즈음, 휴거다 종말이다 난리굿을 펼치던 자들. ‘휴가’도 ‘연말’도 없는 대대손손 노동자들이 무슨 ‘휴거’람. 인간들아~ 휴가부터 가고 보자.

한 중딩이 부모 따라 교회에 갔는데, 목사에게 묻길. “목사님은 숫자를 몇까지 세보셨어요?” “그런 걸 왜 센다니?” “제가 오늘 2000개까지 세다 말았걸랑요. 도대체 설교가 언제 끝날지 세다가 포기했걸랑요.” 목사의 딱딱하고 지루한 설교보다 봄꽃 피는 게 반갑고 감동적이야.

벚꽃이 피면 벗님들 그리워라. 이팔청춘이야 ‘벗고 놀자’ 애인이 좋다지만, 나이 들면 속마음 헤아려주는 속엣말 벗님이 절실해. 교회나 절에 가면 죄다 연상의 형님 누님들뿐이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연상을 좋아하걸랑. 철이 좀 들어서리 말귀가 통하니까. 늙으면 죄 고집불통 보수, 그딴 거 없다. 있다면 깡그리 잊고 사는 건망증이 있을 뿐. 아이들만 말고 벚꽃놀이 모시고 가보렴. 딸내미 며늘아기 금목걸이 옜다 벗어주며, 지혜로운 말씀도 구수해라.

꽃구경 갔다가 눈물이 나서 울었다. 꽃가루 알레르기. 감동해서 운 걸로 쳐두자고. 약을 먹으면서까지 꽃구경은 신나고 즐거워. 남녘에서 시작한 벚꽃이 천천히 서울로 북상 중. 전국을 누비면서 살다 보니 남들보다 긴 시간 벚꽃 구경을 한다. 꽃구경에 관해서만큼은 부럽지가 않아. 가수 장기하씨가 내 이런 인생을 노래로도 불러주는군.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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