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대통령은 대선 출마 과정에선 정치인 신분이지만 취임 후엔 공무원 신분도 가진다. 특히 각종 선거 기간 동안 공개적 행보를 조심해야 하고, 발언도 공정과 중립을 지켜야 한다.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가 헌법적으로 적용된 것은 2004년 제17대 총선 이후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법 위반이긴 해도 탄핵할 만큼 중대 사안이 아니라고 판시했지만 아래와 같은 중요한 기준을 만들었다.

“선거에 임박한 시기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어느 때보다도 요청되는 때에, (중략)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하였다.”

이 판결 이후 취임한 대통령들은 선거 기간 동안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유독 윤석열 대통령은 헌재 결정문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번 총선 기간 동안 최악의 장면을 꼽으라면 ‘민생토론회’다. 윤 대통령은 이 행사를 통해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선심성 정책을 쏟아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GTX 본격화와 철도·도로 지하화 추진, 그린벨트 해제 등 해당 지역의 개발 정책과 숙원 사업을 약속했다. 야당 발표에 따르면 민생토론회 기간 동안 총 1000조원이 넘는 사업을 약속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직접 총선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4·10 총선을 앞두고 민생토론회를 개최해온 윤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 의무와 선거 관여 금지 등의 규정을 어겼다며 각각 서울시선관위와 중앙선관위에 신고했다. 참여연대는 소관 부처와 사전 협의도 거치지 않아 혼선을 빚는가 하면, 민생토론회가 열린 지역들도 총선의 격전지로 보인다는 점에서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더 심각한 것은 KBS 등 주요 방송사들이 민생토론회 내용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는 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보고서에 따르면 KBS의 경우 민생토론회 보도 133건 중 114건이 행사 내용을 ‘단순 전달’한 수준이었다. 공약의 현실성, 선거 개입 등 비평보도는 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중파 방송이 대통령의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전달만 함으로써 여당에 유리한 방송을 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는 해당 보도에 대해 어떤 제재도 하지 않았다.

반면 선방위는 야당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선거와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제재를 남발했다. 불출마 선언을 한 이탄희 민주당 의원의 MBC 라디오 출연에 대해 ‘특정 선거구가 아니더라도 비례대표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법정제재를 결정했다. 이 의원은 해당 방송에 출연해 “양승태 사법농단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재판 개입은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 많다. 정말 비상식적인 판결”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선거 관련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논평하면서 ‘여사’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SBS에 행정지도인 ‘권고’를 의결하기도 했다. 여사라는 호칭과 선거는 무슨 관계인가?

이런 황당한 제재로 선방위가 선거판이 혼탁해지는 것을 부추기고 있으며 언론의 자유는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지난 3월 한국의 자유민주지수가 2021년 17위에서 2023년 47위로 하락했다며 “민주화에서 독재화로 전환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내리막에는 비판적인 방송·언론에 대한 정부의 검열, 미디어의 자기 검열, 기자에 대한 탄압 등 언론·표현의 자유 위축이 영향을 미쳤다고 짚기도 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험수위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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