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게임과 업무상 재해

심완선 SF평론가

갑자기 ‘데스게임’에 꽂혔다. 데스게임은 말 그대로 죽음이 걸린 게임을 뜻한다. 데스게임을 다루는 작품은 <배틀로얄>이나 <오징어 게임>처럼,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서 생존을 걸고 게임에 참여하는 내용을 보여주곤 한다. 탈락자, 패배자는 죽는다. 혹은 죽으면서 게임에서 낙오된다. 참여자는 왜 그런 게임이 진행되어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고 참가한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즉사하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절박해진다.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경쟁하고, 그러다가도 게임 종류에 따라 협동해야 한다. 덕분에 데스게임 작품에는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찐득한 드라마가 피어난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가 주는 재미다.

데스게임을 이용하면 작가는 등장인물을 별다른 개연성 없이도 뜬금없이 죽일 수 있다. 독자 혹은 시청자는 언제 누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의외성도 즐긴다. 우리는 매직미러 뒤에서 게임을 구경한다. 아무리 잔인하고 터무니없는 게임이 펼쳐지더라도 ‘나는 안전하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게임에 의문을 표하기보다 태평하게 ‘쟤는 죽을 만해’나 ‘쟤는 괜찮아 보였는데 아깝네’ 하며 품평한다. 그러니까 데스게임은 죽음이 페널티로 걸린 스포츠 경기다. 혹은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다. 데스게임의 재미와 감동은 좀 저열한 측면이 있다.

다만 데스게임은 분명 게임이기에 참여자들에게는 어떤 기회가 생긴다. 게임은 룰이 명확해야 한다. 참여자는 모두 같은 규칙을 공유한다. 누구든 규칙의 빈틈을 활용할 수 있다. 이들은 심리전, 두뇌 싸움,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며 저항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초점은 주최자, 게임의 배후로 향하곤 한다. 왜 이런 게임이 벌어지는가. 게임의 목적은 무엇인가. 데스게임의 결말은 인물이 죽거나, 밖으로 돌아가거나, 게임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끝난다. 그들은 불합리를 타파하는 방법을 익힌다.

그렇다면 데스게임을 지켜보는 나는 두 가지를 하는 셈이다. VIP 구경꾼의 자리에 앉아 참여자들의 드라마를 음미하기. 문제점을 찾아 결국 상황을 뒤집는 사람들을 응원하기. 픽션을 즐길 때와 달리, 현실로 돌아오면 의문이 든다. 나는 정말 안전한 자리에 있을까? 내 일상도 사실은 거대한 데스게임에 닿아 있지 않나? 수학여행 때문에 낡은 배를 탄다든가, 휴일에 놀러 갔다가 인파에 휩쓸리는 사건은 내 세상의 일이다.

이는 업무상 재해 및 업무상 질병과도 닿아 있다. 주최자는 자칫하면 죽음 혹은 치명적인 부상이 따른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페널티를 아예 모르거나, 예감하더라도 불안을 누르고 참여한다. 그리고 특정 공간에서 불합리한 규칙에 따른다. 서울메트로의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경우, 2인 1조가 아니라 ‘혼자 근무해야 한다’는 룰에 따르다 사고를 당했다. 원진레이온, 삼성반도체 공장, 태안화력발전소, 여러 현장실습 사고와 과로사들. 2022년 기준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요양 재해자 수는 13만명, 그중에서 사망한 사람은 2223명이었다. 업무상 질병 사례는 2만3134명이고, 사망자는 1349명이었다. 위험한 규칙이 아니었다면 예방할 수도 있는 죽음이었다. 이 즐겁지 않은 게임에,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 의무를 묻고 싶다.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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