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병수당은 ‘100년 건강보장정책’의 마중물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코로나19 범유행은 건강이 환경과 사회의 접점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재인식시키며 사회적 책임과 분담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사회의 구조적 요인 때문에 질병이나 부상(이하 상병)의 위험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빈곤의 위험도 달라진다면 이러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의 고안이 필요하다.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누구나 살면서 아프거나 사고로 단기간 근로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근로 능력의 상실은 경제적 무능력을 의미하고 이 기간의 장기화는 빈곤 위험을 높인다. 한국의 근로자는 산재보험이 보상하는 업무상 상병이 아니면 개인 상병의 위험은 직장 복지 또는 개인의 저축과 자산으로 감당해야 한다. 정부는 개인 상병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건강보험 기반의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추진해 왔다. 상병수당 도입은 다음의 장점이 있다. 첫째, 건강보험 대상은 전 국민이므로 고용구조와 일자리 변화에도 모든 형태의 임금 근로자 또는 자영 근로자를 포괄할 수 있다. 둘째, 근로 능력의 상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쉬는 동안 의료 접근을 강제할 수 있다. 셋째, 건강보험에서 의료 이용을 직간접으로 규제하는 인프라 활용이 가능하다. 넷째, 고용·건강·소득 보장의 연계는 건강안전망 강화를 위해 바람직하다.

제도 설계는 운영방식에서 선택을 요구한다. 첫째는 사회보험 또는 공공부조의 결정이다. 사회보험은 전체 근로자의 가입을 의무화하고 납부한 보험료와 연계하여 급여를 제공하지만, 공공부조는 기여와 관계없이 자산 조사를 통해 취약한 근로자를 선별하여 지원한다. 상병수당은 전체 취업자의 근로 능력 상실을 예방하는 제도이고 취약한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공공부조는 이미 취약해진 근로자를 선별하는 행정적 부담뿐 아니라 재원 부족으로 수혜 계층을 제한하기 쉽고, 근로의욕을 감퇴시킬 수 있으며, 자산 조사 과정에서 부정적 낙인을 유발할 수 있다. 둘째는 사회적 위험이 유사한 집단별로 보험을 분리할지, 하나의 보험으로 통합할지의 결정이다. 노동시장 이중화 등 고착된 사회구조적 요인이 집단 간 위험의 격차를 유발하는 원인이라면 고위험 집단을 별도로 구분하는 것은 포용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망으로서 상병수당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 구성원 간 비용의 재분배를 통해 연대를 형성하는 것은 사회의 안전을 유지하는 핵심 기반이며, 사회보험은 가능한 한 많은 근로자가 하나의 제도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하여 위험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다.

올해 7월부터 1년간 개인 상병으로 근로활동이 어려운 취업자를 대상으로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일부 지역에서 시행될 예정이다. 상병수당은 아픈 근로자에게 의료와 소득을 함께 보장하는 건강보장정책으로서 의미가 깊다. 독일은 1883년 사회보험 급여로 상병수당을 도입했다. 상병수당은 긴 역사만큼 신중하고 점증적인 방식으로 도입해야 한다. 시범사업 기간은 이 제도의 준비뿐 아니라 병가 제공에 대한 고용주의 의무, 상병수당과 역할 분담을 위한 노사 간 단체협약의 조정, 기타 고용 및 소득 보장제도와의 연계 가능성을 숙고하고 발전시키는 기회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상병수당은 아프면 집에서 쉬는 방역 문화 조성의 핵심 정책이다. 상당한 재원이 투입될 수 있는 만큼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다소 엄격한 수준의 출발과 점증적 확대가 필요하다. 다만, 취약계층 근로자의 보호가 지연되고 보장 수준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시급성을 고려한 보완책 마련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청년과 미래 세대 근로자가 편견과 낙인 없이 아플 때 고용과 소득을 충분히 보장받는 문화와 환경을 조성하는 마중물로서 한국형 상병수당이 새로운 100년 건강보장정책을 견인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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