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한 정책 상상력

남경아 <50플러스 세대> 저자

‘교육보험’을 기억하는가? 1958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이 보험은 자식들 교육열만큼은 세계 원톱이었던 우리 부모들의 학비 걱정을 덜어준 덕분에 그 인기가 대단했다. 금융상품은 사회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영역이다. 고령화 시대를 맞은 지금은 시니어를 위한 금융산업이 대세다. 그런데 현재의 금융상품은 기존 은퇴 개념에서 출발한 것들이 대다수다. 특히 새롭게 등장한 중장년 세대를 위해 일종의 전환기 교육보험과 같이 획기적 대안들이 나와야 할 때다.

중장년 전환기를 지원할 사회적 제도, 법과 관련해서 미국의 사회혁신가 마크 프리드먼(Marc Freedman)의 제안이 돋보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개인 목적 계좌’ ‘앙코르 법안’을 제시했다. 길어진 인생 주기에 맞춰 전환기에 여러 대비를 하려면 전문 자격증 취득, 새로운 공부에 필요한 등록금, 장기 여행·연수와 같은 목돈이 필요하다. 이런 비용 마련을 위해 개인 퇴직 계좌처럼 세제 혜택이 있는 여러 장치들을 개발해 비용 부담을 덜어주자는 게 핵심 요지다. ‘앙코르 법안’은 더 개혁적이다. 예를 들면 개인마다 전환기 비용이 필요한 시점에 1~2년 미리 사회보장 연금을 받아쓴 다음 나중에 다시 완전한 혜택을 받게 하는 등 사회보장 제도를 개인의 상황과 특성에 맞춰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활용하자는 내용이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고, 워낙 방대하고 전문적 분야이므로 말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전환기 준비는 아직도 개인 각자의 몫일 뿐만 아니라, 은퇴 준비에도 양극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단순 프로그램 수준을 넘어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불평등 해소를 위해 기존 제도를 개혁하는 것으로까지 중장년 정책 담론이 확산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조금만 고민하면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학자금 지원도 그렇다. 우리 사회 학자금 지원은 청년에게 집중되어 있다. 전환기 준비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면 이제 생애전환기 맞춤형 학자금 지원도 검토되어야 할 시기다. 일부 직업군에만 존재하는 ‘안식년제’를 모든 직업군으로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종의 ‘생애전환 휴가제’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이런 혜택이 모든 계층에 고르게 갈 수 있도록 자영업자의 경우 일정 시간 동안 영업시간 조정에 따른 수익 손실분 지원 등을 검토하는 것이다. 다수의 호응을 얻고 있는 ‘중장년 인턴십’ 프로그램도 현재는 공공의 사업비로 추진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공공기금을 무한정 투입할 수는 없다. IBM,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 사례처럼 혁신적 인사관리, 사회적 책무 차원에서 중장년 인턴십을 확산하는 데 기업들의 참여가 요구된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이미 우리나라 중위연령은 45.6세고, 2050년에는 57세에 육박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언제부터 노후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어찌 보면 이제는 노후준비가 아니라 전 국민 생애 준비 관점으로 정책과 제도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종종 우리도 이 시대의 변화 속도가 버겁기만 하다. 그리고 뛰어가는 고령화 속도에 비해 정책은 기어가는 것은 아닌지 답답할 때가 있다. 창의적 나이 듦을 만들어가는 담대한 정책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남경아 <50플러스 세대> 저자

남경아 <50플러스 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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