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심적 병역거부 지평 확장한 대법원 판결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아니면서 비폭력주의 신념에 따라 현역 입영을 거부한 사람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모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비여호와의증인 신도 중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가 무죄를 받은 사례는 있었으나, 현역 입영 거부 사례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의미와 지평을 또 한 차례 확장한 대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

정씨는 2017년 11월 현역병 입대를 거부했다가 기소됐다. 성소수자인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문화에 반감을 느껴왔다고 한다. 대학 입학 후 사회참여적 기독교 단체에서 활동하며 반전 시위에 참여했고, 대학원 과정에선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스스로를 ‘퀴어(성소수자)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다. 다양성을 파괴하고 차별과 위계로 구축되는 군대 체제를 용인할 수 없다는 내면적 결론에 이르렀다. 1심은 정씨의 병역거부 사유가 병역법상 처벌 예외에 해당하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과 소수자를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비폭력주의와 반전주의를 옹호하게 된 것”으로 판단해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를 선언했다. 같은 해 11월 대법원도 여호와의증인 신도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음 인정하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후 각급 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랐으나, 절대다수가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청년들이 피고인 신분으로 양심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고통에 시달려왔다. 인간의 존엄과 직결되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특정 종교·교파에 국한된 쟁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헌법 제19조의 천명은 준엄하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양심’의 얼굴은 다양하다. 종교나 신앙일 수 있지만 비폭력주의, 반전주의, 평화주의, 페미니즘일 수도 있다. 다양한 양심의 얼굴을 인정함으로써 보다 많은 시민이 양심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만큼 이를 충실히 구현하려는 정부와 법원의 의지가 필요하다.


Today`s HOT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해리슨 튤립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