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행령으로 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삼권분립 어기는 꼼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일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을 한달 앞두고 법무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일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을 한달 앞두고 법무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법무부가 이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법무부는 검찰의 직접 수사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개정안을 이달 29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11일 밝혔다. 국회가 만든 법률을 하위규정인 시행령을 통해 우회하겠다는 ‘꼼수’다. 국회의 고유권한인 입법권을 침해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다음달 10일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 검사가 직접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범죄는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줄어든다. 입법 취지는 직접 수사 대상을 6개 범주에서 2개 범주로 축소한 데 있다. 하지만 법무부가 공개한 시행령 개정안은 이러한 취지를 외면하고 부패·경제 범죄의 범위를 폭넓게 다시 규정했다. 또한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는 문구를 확대 해석해 공직자·선거범죄 중 일부도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무고·위증죄 등 사법질서저해 범죄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특별법 등 개별 법률이 검사에게 고발·수사의뢰토록 한 범죄 역시 ‘중요 범죄’로 분류해 검찰 수사 개시 대상에 포함시켰다. 국회 입법과정에서 ‘등’이 포함되며 검찰 수사권 축소 취지가 형해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현실화한 셈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개정법 관련)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이 늦어질 경우 부패·마약·조폭이 판치는 것을 막아야 하기에 시행령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당사자다. 스스로 심판을 청구했으면 헌재 판단을 기다리는 게 도리다. 이제 와서 헌재 판단이 늦어질 것 같으니 시행령으로 상위법을 회피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여야 원내대표가 ‘검찰 수사권 축소’ 후속 조치를 논의할 ‘형사사법체계개혁특위’(사개특위) 구성에 합의하고 위원 선임도 마친 터다. 법무부와 검찰은 국회든 헌재든 아랑곳하지 않는 ‘무소불위’ 기관인가.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은 형사사법체계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입법 과정이 더불어민주당의 일방적 속도전으로 진행되면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사라지는 등 보완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후속 보완 작업은 국회 사개특위가 맡아서 할 일이다. 수사권을 남용해 개혁 대상이 된 검찰이 나설 계제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윤석열 정부는 시행령 개정 꼼수를 동원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치를 강행하면서 ‘시행령 통치’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시행령은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에 대해 행정부가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국회가 법률을 만든 취지와 의미를 행정부에서 자의로 해석하거나 왜곡해선 안 된다. 법치를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통치에 기대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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