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혁파 앞세운 윤석열 공정위, 시장 질서 바로잡겠나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한기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연합뉴스

신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한기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본 업무는 규제와 단속이다. 재벌·대기업의 시장 독점과 불공정 행위, 갑질 등을 조사하고 처벌하는 일이 본연의 임무인 것이다. 공정위가 ‘경제 검찰’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 삼아 공정위의 규제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19일 지명 뒤 일성으로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한 혁신을 통해 없애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6일 공정위원장 부재 속에서 이뤄진 공정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핵심도 규제 완화였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벌 규제의 기준 역할을 하는 총수의 친족 범위를 축소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의무 휴업일에 대형 유통업체가 온라인 배송 영업을 하는 길도 열어주려 하고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복합 위기로 경제 상황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재벌 규제를 없앤다고 바로 경제가 살아날지는 의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경제위기를 이유로 공정위 기능을 약화시켰지만 기대와 달리 낙수효과는 없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민간 경제 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 보장을 전제로 하지만 미국 등 거의 모든 나라가 공정거래제도를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시장 독점과 경제력 집중을 방지해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두는 것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약칭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공정위 사무는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 규제,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 집중의 억제, 부당한 공동행위 및 사업자단체의 경쟁제한행위 규제, 불공정거래행위와 재판매가격유지행위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의 금지행위 규제 등 크게 4가지다. 이로 볼 때 한 후보자의 발언이나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 등은 공정거래법에 언급된 이런 규제 업무에서 손을 놓고 재벌·대기업 편에서 경제를 운용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밖에 없다. 본연의 업무를 변경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공정위 규제 혁파는 시장의 룰을 바꾸는 것으로, 시민의 삶에 바로 영향을 준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기후위기로 산업 전반에도 재편이 불가피하다.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체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위를 통한 규제 철폐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국회는 한 후보자에 대한 인사 검증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이 상위 규정인 공정거래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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