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번엔 SPC서 노동자 끼임 사망, 달라진 게 뭔가

지난 15일 오전 6시쯤 경기 평택 소재 SPC그룹 계열 SPL 제빵공장에서 23세 청년이 작업 중 목숨을 잃었다. 무게 300㎏의 원재료를 부어 샌드위치 소스를 만드는 교반기 작업을 하던 중 높이 1.5m의 기기 입구에 상반신이 빨려들어갔다.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하려 대학 진학 대신 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길을 택한 터라 그의 죽음은 더욱 안타깝다. 24세 김용균씨가 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희생된 지 4년, 그간 중대재해를 막자던 숱한 외침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회사 측의 산재 예방 노력은 미흡했다. 교반기 9대 가운데 사고 기기를 포함한 7대에 뚜껑을 열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는 방호장치가 없었다. 사고 공장에서는 지난 7일에도 계약직 직원의 팔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관리자들은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안전교육은 하지 않은 채 가짜로 교육을 이수했다는 서명만 받았다고 한다. 2인1조 근무 원칙도 허울뿐이었다. 한 명은 재료를 교반기에 넣고, 다른 한 명은 완성된 소스를 옮기느라 자리를 자주 비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측인 SPC그룹의 대응이다. 사고가 발생한 당일 회사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에는 파리바게뜨의 영국 런던 매장 오픈을 홍보했다. 그리고 17일, 사고 직후 100여명의 노동자들이 폴리스라인이 쳐진 사고 현장 옆에서 조업을 강행했다는 사실까지 나왔다. 허영인 SPC 회장이 이날 “회사 생산 현장에서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매우 참담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사과문을 냈지만,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이유다. SPC는 2017년 제빵·카페기사를 불법파견하고 수당 110억원을 체불해 시정조치를 받은 것을 비롯해 근로기준법 위반과 부당노동행위로 여러 차례 물의를 빚었다.

SPL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해 사업자·경영책임자가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 올해 1~8월에만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400명이 넘는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까지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윤석열 대통령은 16일 “정확한 사고경위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는 없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기업 입맛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해 무력화하려는 정부의 시도부터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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