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작은 사업장·과로·안전은 뒷전이 된 ‘노동 홀대 사회’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 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기숙사 보장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성동훈 기자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 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기숙사 보장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성동훈 기자

다시 맞는 노동절이다. 1886년 5월1일 미국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게 노동절의 유래인데, 어느 해보다 그 의미를 상기해야 하는 오늘이다. 노동자들이 오랜 시간 땀과 투쟁으로 얻어낸 노동시간 단축을 국가가 되돌리려 하고 있다. 137년 전 노동자들의 외침이 2023년 한국에서도 절실히 터져야 하는 게 참담할 뿐이다. 노동 사각지대와 등급화가 커지고 있는 것도 우울하다. 1일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노동절 기념집회를 연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공허해진 그 말을 지키고, 노동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노동자들의 현실은 엄혹하다. 그중에서도 근로기준법조차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더 많이 오래 일하는데도 생계가 막막하고, 일자리마저 위태롭다. 일하다가 숨지거나 다치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난다. 정부가 되뇌는 법치나 노동개혁 논의에서도 뒷전에 밀린 이들이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부당해고, 주 52시간제, 연장·휴일·야간 가산수당, 연차휴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에서 비켜서 있다. ‘노동자’인데도 ‘법 밖의 노동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올해 노동절 앞에 익명의 채팅방에서 30인 미만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개 노조도 없는 사업장에선 퇴사·해고 고민이 많았다.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수년간 지급해온 전남의 편의점 업주가 당국 조사를 받게 된 사례도 있다. 여전히 ‘청소년 노동 착취’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노동절의 단상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이더라도 차별 없이 적용되는 게 최저임금법이었는데, 정부는 사실상 근로감독을 포기하고 불법을 방치해왔다. 정부가 근로기준법 확대를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우린 몇 등급 시민이냐’고 묻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설움과 분노는 오늘도 차오르고 있다.

그런 정부가 힘 쏟고 있는 현안은 노동시간 연장이다. 주 69시간이든, 60시간 이상이든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할 길을 터주는 것과 진배없다. 정부가 할 일은 주 52시간제에서도 세계 최장 수준인 노동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현장에서는 참혹한 죽음이 줄지 않는다. 지난 29일에도 경기 여주 물류센터 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점검하던 노동자 2명이 추락 사고로 숨졌다. 돈보다 안전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시급한 노동 현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인간 존엄성 보장’ 기준을 원칙적으로 적용받지 못하고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두껍게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대로 부자·기업·자본에 기울어진 정부에서는 ‘노동 홀대’ 풍조가 사라질 수 없다. 133돌을 맞는 노동절이 노동존중 사회로 가는 또 한 번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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