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와 여러모로 닮았다. 사전에 위험 신호가 있었지만 적절한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아 큰 인명 피해가 났다는 점이다. 참사 후 정부 관계자들이 보여준 인식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해 “이번이 아니면 종전 때까지 기회가 없을 것으로 보였고, 한국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수해 와중에 굳이 출장 기간을 연장해 우크라이나에 다녀와야 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우크라이나는 다음에 가기 어려운 반면, 윤 대통령이 일찍 귀국해도 수해 대응엔 별 도움이 안 됐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솔직한 대답이라고 본다.
문제는 그 말에 담긴 인식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한 것과 흡사하다. 2개월 앞서 서울지역 수해 때 일찍 퇴근한 윤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재난 발생 때 대통령실이 직접 지휘에 나설 경우 현장에 상당한 혼선이 발생한다”고 한 변명도 마찬가지다.
위기 시 대통령의 부재를 따지는 것은 단순히 ‘대통령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서 문제’라는 의미가 아니다. 지난해 수해와 이태원 참사를 겪은 뒤 대통령이 재발 방지를 위해 무얼 했는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비용과 효율을 중시하는 그의 철학이 공무원 사회에 미친 영향은 없었는지 묻는 것이다.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이유는 그 자리가 갖는 무한한 책무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결정은 지난 5월 G7 회의 때 수해 대응을 위해 조기 귀국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도 대비된다.
고위직들이 참사 때마다 내놓은 말들은 일관된 함의를 갖는다. 대통령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말라는 것이다.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줄 수 없으니 각자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사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시민들에게 각자도생을 권한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