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당잡힌 ‘사상의 자유’

〈김명인/ 문학평론가〉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이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일상 속에서 확인하기 위해서 한 고교생이 100일도 넘게 투쟁을 벌였고, 마침내 그 상식은 어렵게 ‘인증’되었다. 강의석군이 다니던 기독교계 학교가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종교를 갖지 않은 학생들이 학내 기독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약속한 것이다. 반가운 일이지만 상식이 상식으로 인증되기 위해서 한 고교생이, 그것도 입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이 그처럼 큰 희생을 치러야만 했는가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생각해 보면 고교 평준화가 시행된 1974년 이래 꼭 30년 동안 고교사회에서 종교의 자유는 ‘유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고교생이 목숨을 걸 때까지 이 사회는 국민의 기본권이 유린되고 있는 사실을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냉전의 유물 국가보안법-

그러나 사실은 지금 그보다도 더 심하게 유린되고 있는 기본권이 있다. 사상의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 사상적 선택을 할 자유가 있음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어느 누구도 대한민국이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948년에 제정되어 이미 50년이 넘도록 유지되어 온 국가보안법을 정점으로 하는 분단시대의 냉전문화와 의식, 그리고 그에 기초하고 있는 제도 아래서 사상의 자유는 의당 제한되거나 유보되어도 좋은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게다가 사상의 자유를 이행하는 일은 단지 소극적으로 제한되거나 유보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방해받고 금지되어 왔다. 심지어는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감시받고 투옥되고 처형되었다.

평준화 제도 아래서 강의석군 같은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듯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도 국민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수많은 강의석군들이 특정 종교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 자신의 종교의 자유를 지킬 권리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국민은 이른바 국시라는 ‘반공’과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반공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북한을 반정부단체로 간주해야 하고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이념을 사갈시해야 한다는 논리는 기독교 계통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와 똑같이 폭력적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선진국 미래상과 안맞아-

사상의 자유에는 그 사상을 가지고 있을 자유뿐만 아니라 표현하고 선전하는 언론의 자유, 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단체를 결성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까지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이 신봉하는 이념과 사상의 논리에 의해 공공의 안녕을 심각하게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체제변경의 자유도 포함된다. 그래야 우리는 분단과 냉전의 20세기를 넘어 새로운 선진국가의 멋진 미래상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한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99%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마지막 1%가 없다면 그것은 100%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민의 양심과 영혼의 한 부분을 질식시키고 있는 나라가 세계와 인류의 앞장을 서는 국가가 될 수는 없다. 영원히 우울한 2등 국가의 운명을 지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딱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불행한 자폐적 분단국가를 어찌할 것인가. 국가보안법에 자기의 자유를 기꺼이 저당 잡힌 저 수많은 몽매한 영혼들 앞에서 새삼 장탄식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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