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없는 경제색깔론

〈제정임 칼럼리스트〉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집권당이 당당하게 ‘좌파’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좌파’라는 명패가 환영받지 못한다. 해방 후의 좌우대립과 6·25전쟁, 반체제인사를 ‘친북용공’으로 몰아 탄압한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상당수 한국인들에게 ‘좌파’하면 ‘빨갱이’가 떠오르는 ‘레드 콤플렉스’가 생겼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에도 ‘좌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분배와 형평을 중시한다’는 의미를 넘어 하향평준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매도되는 경향이 있다. ‘나눠먹자는 것은 북한처럼 다 같이 거지가 되자는 것’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공세 탓이다.

- 정부 시장개입 좌파매도 -

요즘 ‘좌파적 경제 정책’에 대한 공격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반시장적 정책으로 기업들이 불안해 투자를 안 하고 부자들이 돈을 안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1인당 소득이 1만달러대에서 5,000달러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학자 출신의 한나라당 의원, 현직 경제학 교수,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 그리고 과거 정권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국회 예산처장까지 이런 주장에 가세했다. 급기야 경제부총리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중도우파’라고 정리하고 나섰지만 ‘불온한 정권의 불온한 경제정책’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좌파정책의 근거로 내세우는 제도들을 따져보면 그들의 경력과 전문성이 무색할 만큼 설득력이 떨어진다. 먼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살펴보자. 이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 지분을 가진 재벌총수가 회사 돈을 이용해서 많은 계열사들에 ‘제왕적 지배권’을 구축하는 일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다. 대다수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재벌계열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 역시 예금자들의 돈이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확대하는 데 이용되는 것을 제한하는 장치다. 주주와 예금자를 보호하고 기업지배구조를 선진화하자는 것이 좌파적이며 반시장적이라니, 어이가 없다.

대기업 경영자들의 보수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좌파적이라는 주장도 미국이나 유럽 경영자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선진국에서는 경영자보수 공개가 투자자에 대한 의무로 당연시되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예산이 늘었다는 것을 좌파정책의 근거로 드는 사람도 있다. 선진국들이 ‘지속가능한 시장경제’를 위해 사회안전망 확충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그에 비해 우리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몰라서 하는 얘긴가? 이들은 분배 얘기만 나오면 마치 우리가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의 전철을 밟는 것처럼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교과서처럼 인용되는 미국에서조차 공정한 경쟁 질서를 위한 정부의 개입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분배 정책이 탄탄하게 제도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모른 체한다.

- 과학적 대안없는 비판뿐 -

먹고 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한탄하는 국민들을 위해 정치권, 지식인, 언론 등은 경제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 정부 정책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매섭게 비판하되 각론으로 들어가 대안을 제시하는 게 옳다. 근거없는 색깔론으로 불안심리를 부추기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은 최근 경제난과 관련해 “중산층의 돈이 부동산 투기로 묶인 것이 소비부진의 주원인 중 하나”라며 “부동산 가격을 20%가량 낮출 수 있는 정책을 써서 돈이 빠져나오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았다. 많은 사람들이 찬반을 떠나 이 의견에 주목한 것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과학적 분석과 처방은 제쳐놓고 색깔공세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실력이 없는 것인가, 양심이 없는 것인가.

|워싱턴에서 discuss@intiz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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