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니스트 discuss@intizen.com〉
20년도 훨씬 더 지난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칠판과의 대화’로 유명한 수학선생님이 있었다. 수업 내내 칠판만 보고 쓰고 지우며 낮은 목소리로 강의하다 나가는 분이었다.
평준화 이전의 명문 여고생 수준에 맞춘 그분의 강의를 ‘뺑뺑이’로 들어 온 우리는 고작 몇 명밖에 이해하지 못했으니, 그 시간에 아예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수십 명을 바라보기가 민망하셨던 것 같다. 고교 평준화가 시행된 수십 년 동안, 이런 웃지 못할 일들이 아마 전국의 교실에서 적지 않게 벌어졌을 것이다.
-‘능력별 과목수업’등 참고필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학력의 하향 평준화’와 ‘교실의 붕괴’를 지적하며 입시 부활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들으면 참 답답하다. 입시가 있던 시절, 전국의 고등학교를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웠던 그 제도가 얼마나 명문 지상주의를 부추기며 많은 가슴에 못을 박았는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가 훨씬 어려웠던 그 시절엔 그래도 고교 입시를 위해 과외를 받는 중학생이 절대 다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입시가 부활된다면 중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입시 지상주의’의 광풍에 휘말릴 게 뻔하다.
평준화 교육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부작용이 더 큰 입시 부활이 대안이 될 순 없다. 평준화의 취약점을 보완할 실질적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경쟁’을 입에 달고 사는 미국도 불꽃 튀는 경쟁은 대학들 얘기지 고등학교까지는 평준화가 골격이다. 사립학교를 선택해 가는 부유층이 꽤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소수이고 대다수 아이들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립학교를 다닌다. 미국에서도 공교육의 수준을 걱정하는 소리가 늘 나오지만, ‘평준화가 문제이니 입시를 도입하자’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능력별 수업’을 통해 평준화의 취약점을 보완하려고 애쓴다.
워싱턴 지역 한 고등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한 학기 7과목 중 수학·영어·과학·역사는 우등반(honor class)과 보통반으로 나눠 편성한다. 과목별로 반 편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과거 우리나라의 ‘우열반’과 달리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가 그리 표 나지 않는다. 우등반 아이들은 더 어렵고 많은 과제를 해결하면서 깊이 있게 배우고, 보통반 아이들은 교과서를 충실히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우수한 아이들은 또 AP니 IB니 하는 특별 과정을 선택해 대학 학점을 미리 딸 수도 있다. 학교 수업을 통해 얼마든지 심층적인 공부를 할 수 있고, 이런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가 대학전형에 고려되기 때문에 학원에 다니느라 학교공부를 소홀히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영재교육도 평준화 보완의 중요한 요소다. 지역별로 공립과학고가 있어 소수의 영재들을 뽑아 창의적인 교육을 한다. 각 초·중학교별로도 상위 10~15%의 영재를 뽑아 특별교육을 하기 때문에 ‘가난한 수재’도 사교육비 부담 없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다. 이런 교육을 감당하기 위해 교사들도 쉼 없이 배운다. 지속적으로 대학원 학점을 따야 연봉이 올라가기 때문에 방학 때도 바쁘다.
-‘학교 영재교육’ 비용 부담없어-
우리나라에서 내신 ‘뻥튀기’와 고교등급제 파문이 벌어진 것은 교육당국이 평준화의 문제점을 방치한 채 획일적 대입제도를 강요한 탓이다. 이제라도 우리 실정에 맞는 능력별 수업 등을 통해 학교 교육을 되살리고, 성적 부풀리기가 아닌 학생들의 진짜 실력 높이기에 교사들이 전력투구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 역시 사회적 부작용이 큰 편법까지 써가며 성적 좋은 학생 뽑기에 치중하기보다 대학 교육의 경쟁력을 고민해야 한다. 수재를 뽑아 범재를 만드는 대학들이 고등학교 탓만 한다는 비판을 면하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