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기회와 불안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새 대통령이 선출됐고, 인수위도 구성됐다. 마땅히 새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끌어 주기를 바라야 하겠지만 야권을 지지한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박근혜 당선인이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5년 전에는 야권 지지층에서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지라 정권교체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겪은 국민들이 ‘변화’를 선택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에 결과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와서 냉정하게 생각하면 박근혜 후보가 변화라는 키워드를 선거과정에서 더 효과적으로 수용했던 것이 중요한 승인인 것으로 보인다. 정책적으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민생과 복지 등의 구호를 내걸고 나온 것이 야권 후보가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유권자들에게는 더 큰 변화로 보였다. 인물면에서도 선거운동의 중심에 새 인물들을 더 잘 노출시켰다. 박근혜 후보가 이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었지만 유권자들에게는 여권 내부에 역동성이 살아 있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정동칼럼]박근혜, 기회와 불안

정작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야권, 특히 민주통합당의 선거운동에서는 새 정책, 새 인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야권이 진정으로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의문들이 해소되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50대의 선택을 놓고 말이 많은데 필자는 이들이 단순히 보수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변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50대는 1985년 2·12총선 이후 선거의 역동성을 다른 어떤 세대보다 잘 체험했다. 보수적 성향에 따른 맹목적 투표가 아니라 나름의 합리적 근거를 가진 선택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당선인의 앞에는 유권자들이 원하고 본인이 약속했던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결국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대한민국호를 좌초시킬 것인가라는 갈림길이 놓여 있다. 앞으로 어느 길을 가게 될 것인가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기회와 불안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우선 박근혜 당선인에게는 5년 전 이명박 당선인과는 달리 권력정치보다 국민들이 원하는 변화에 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것을 기회요인으로 들 수 있다. 당시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기존 정부가 구축한 시스템, 인물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우선 힘을 쏟았다. 박근혜 당선인은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자초할 필요가 없고 정권 초기부터 자신이 내건 통합과 변화에 초점을 맞춘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가 사유화한 권력기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는 큰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다. 변화와 통합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특권과 기득권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남겨 놓은 가장 부정적인 유산은 경제적 실정이 아니라 검찰을 비롯해 공영언론, 경찰, 국정원 등의 권력기관을 정권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기관들 내의 수구적 세력은 정권 요구를 충실하게 수행하며 자신들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특권과 기득권을 더 강화했다. 대통령이 변화와 통합을 이야기하더라도 권력의 손과 발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새 정부가 성공하기는 어렵다. 6개월 정도의 경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3년간 기고해 온 칼럼의 마지막 회를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쓴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올해 두 번의 선거결과가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국민들은 정체보다는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희망을 본다. 모든 뜻있는 사람들이 좌절하지 말고 “선비의 뜻은 크고 의지는 굳어야 한다.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任重而道遠)”라는 옛말을 좌표로 새 출발에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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