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개혁 못할 이유 뭔가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흘렀다. 지난 2년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으로 시작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마녀사냥식의 ‘종북’몰이, 내란음모 무죄 그리고 통합진보당 해산에 이르기까지 구슬들이 하나로 꿰어진다. 그 중심에는 국가정보원이 있다.

[정동칼럼]국정원, 개혁 못할 이유 뭔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서 국정원이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원장의 지시에 따라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야당 후보를 폄훼하고 이명박 정부를 칭송하는 정치적 성향의 글을 은밀하고도 광범위하게 유포시키는 방식으로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 사이버상의 댓글달기를 오프라인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만약 오프라인에서 대선 시기에 국정원 직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다면? 명백한 관권선거다. 그러니까 단순한 댓글사건이 아니다. 정보기관이 대통령 선거에 직접 개입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는 민주주의와 선거의 공정성을 파괴한 사건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원세훈 개인이 저지른 일탈행동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입을 닫았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최고 권력기관인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는데 그게 국정원장 개인의 일탈이라고? 허탈하다.

2014년 2월에는 국정원의 증거조작이 세상에 폭로되었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씨 사건에서 국정원은 유씨의 북·중 출입경기록을 위조했고, 그 사실이 탄로날까봐 내부 기획회의까지 하면서 제2, 제3의 위조행각을 이어나갔다. 참으로 파렴치하다. 국정원의 범죄수법도 진화하는 것일까.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온갖 고문과 불법구금으로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둔갑시키던 국정원의 술수가 이젠 외국 공문서를 조작하는 짓까지 서슴지 않는 형국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반성도 없고 개혁도 없다. 오히려 국정원 사람들은 큰소리친다. 그들은 대선개입의 범죄행위를 저질러놓고 ‘대북심리전의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강변하면서 대북심리전 강화를 개혁방안이라고 내놓았다. 우리 국민들이 국정원의 심리조작 대상인가. 증거조작이 들통나니까 그들은 ‘법이 엄격해서 간첩을 못 잡는다’고 말한다. 수사권을 강화하고 감청도 쉽게 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듣기엔, 간첩 조작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권한을 달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이다.

이런 사건들은 일부 국정원 직원들의 과잉충성에서 빚어진 일탈행동이 아니다. 무소불위의 통제받지 않는 권한과 조직, 잘못된 관행, 그리고 ‘법이고 뭐고 간에 종북을 때려잡으면 그만이다’라는 그들만의 삐뚤어진 신념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국정원의 ‘작품’이다. 그들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주는 마취제와 같은 사건이다. 국정원 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국정원이 과감하게 불법 선거운동을 하고 또 증거를 위조해 사법정의 농락을 일삼는 범죄집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이 해외 정보 외에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 권한과 공안사건의 수사권 등 과도한 권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국정원의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도 정보기관은 존재하지만, 국내외의 모든 정보 수집과 공안사건 수사권까지 한 손에 거머쥐고 있으면서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는 경우는 없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정보기관은 수사권을 갖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내 보안정보와 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기관이 각각 독립기관으로 분리되어 있다.

국정원 개혁을 말하면 늘 제기되는 반박논리가 있다. ‘분단체제의 특수성’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분단국가였던 서독은 냉전이 극심했음에도 정보기관을 쪼개 권력을 분산시키고 모든 정보기관에 수사권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개혁했다. 정보기관의 과도한 권력집중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과감하게 실천한 것이다. 우리가 과거 서독처럼 정보기관 개혁을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범국민적 국정원개혁위원회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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