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는 결심, 퀴어문화축제가 보여준 ‘함께’의 힘

박하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3년만에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16일 부스 활동과 개막식 등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3년만에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16일 부스 활동과 개막식 등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16일 서울광장. 퀴어퍼레이드가 시작되자 비가 내렸다. 퍼레이드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환호하던 시민들은 우산을 펼치거나 우비를 입고 행진에 나섰다. 빗줄기는 점점 강해지더니 급기야 퍼부었다. “흠뻑쇼네!” 장대비도 퀴어와 이들에게 연대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꺾지 못했다. 이들은 비를 뚫고 나아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의 음성은 축제에서 퍼져나온 웃음과 함성, 빗소리에 묻혀갔다.

“살자, 나아가자, 함께하자” 23회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이다. 2000년 이후 이어져 온 퀴어문화축제에서 슬로건에 ‘살자’가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혐오와 차별, 팬데믹, 자연재해와 전쟁 속에서 성소수자가 꿋꿋이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20년부터 3년여간 이어진 팬데믹 기간, 퀴어에게 ‘산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다가왔다. 퀴어를 향한 혐오는 더 거세지고 공공연해졌다. 2020년 5월 이태원의 성소수자 클럽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일어나자 혐오에 편승한 언론 보도와 근거 없는 정보가 쏟아졌다. 트랜스젠더 작가 이은용씨,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었던 트랜스젠더 김기홍씨, 스스로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첫 직업군인 변희수 하사 등 성소수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졌다. 이들의 죽음이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누구도 남겨둬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응답한 건 여당도, 제1야당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두고 갈 수 없습니다.” 부임 후 첫 주말 일정으로 퀴어문화축제를 찾은 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말했다. 총 12명의 각국 대사가 무대에 올라 ‘모두를 위한 평등’ 원칙을 재확인했다. 퀴어, 앨라이 단체뿐 아니라 장애인권단체, 성폭력 피해자 단체 등이 동참했다. 종교계도 연대했다. 한 스님은 퀴어를 상징하는 무지개를 본뜬 팔찌를 축제를 찾은 시민들의 손에 하나씩 채워줬다. “잘 모르기 때문에 와 봤다”는 시민들, 자녀의 손을 잡고 온 가족 등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진 시민들을 광장은 품었다.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찬반의 영역으로 단편화한 구호에는 평범한 시민들의 얼굴이 가려져 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 있다. 조직위의 비영리법인 신청을 불허하고 서울광장 사용 신고를 ‘허가제’처럼 운영하는 서울시, 차별금지법 제정에 손을 놓은 국회와 정부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자’는 결심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접하길 바란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기자메모]‘살자’는 결심, 퀴어문화축제가 보여준 ‘함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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