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것만 보는 중국

612년 수양제는 1백만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했다. 하지만 수나라군은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하는 고구려군에 의해 살수에서 참패했다. 고구려 정벌 실패는 수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수나라·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국운(國運)을 건 나라간의 전쟁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중국은 이들 전쟁을 내전(內戰)이라고 우기고 있다. 중국의 중앙정부가 지방정권을 진압하려 했던 전쟁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일들이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 이유이다. 현재라는 시점에서 과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역사적 착시(錯視)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만주는 중국의 영토가 아니었다. 고구려가 지배하고 통치한 땅이었다. 실제로 중국이 만주를 자기영토로 통치한 기간은 길지 않다. 오히려 만주지역 세력인 요(遼)와 금(金), 그리고 원(元)과 청(淸)에 의해 중국 전체 혹은 북부가 지배를 받았다.

-과거 역사를 자의로 재단-

카이사르는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말했다. 인간이 지닌 ‘사고와 인식의 틀’ ‘고정관념’의 한계를 지적한 말이 아닌가 싶다. 만주지역에서 고구려, 발해, 부여 등 한민족의 역사와 숨결을 지워버리려는 중국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중국은 지금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강조한다. 이를 토대로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모두 중국사, 중국 영토안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의 역사 또한 모두 중국사라는 이론을 끌어냈다. 고구려는 그 영토가 현재의 중국 땅 안에 있었고, 조공·책봉을 통해 종속관계를 맺었으며, 멸망후 상당수 고구려인이 한족에 융화됐기 때문에 고구려사는 곧 중국사라는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은 자연의 법칙이다. 동북공정 논리에 대해 다양한 반작용들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과거를 자의로 재단하는 것은 ‘침대에 발을 맞추는’ 격이다. 역사적으로 영토는 항상 가변적이었다. 고정불변이 아니었다. 땅위에 사는 민족들의 이동도 빈번했다. 조공과 책봉도 그렇다. 이것은 종속과 신속(臣屬)이 아닌 당시의 외교형태로 보아야 한다.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은 중국과 인접했던 나라들로부터도 나온다. “몽골족이 건립한 원나라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몽골사의 일부분이다.” “돌궐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 당당한 독립국가였던 돌궐(투르크)은 터키의 역사이다.” 얼마전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학술회의에서 몽골과 터키 학자가 한 말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비판론이 나왔다. 저명한 문화비평가인 주다커(朱大可)는 중국 사학계를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관(史官)들’로 묘사했다. 이같은 경향은 합리적 학자들의 입을 막아 ‘문화적인 말더듬이’ 현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총리의 발언도 중국의 일부 역사학자들이 ‘고대로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 ‘조선은 기자(箕子)의 자손’이라는 등 고대사를 얼마나 왜곡해 왔는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침대에 발을 맞추는 격-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과거와 대화하는 중국의 ‘현재’는 55개 소수민족과 지금의 방대한 영토로 이루어진 국가의 기본틀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과거의 상처와 콤플렉스를 딛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민족적 자긍심을 매개로 뜨겁게 점화되어 나가는 중화(中華)주의로 각인되어 있다. 공자와 노자와 사마천의 나라인 중국은 ‘문화의 나라’답게 마음을 열고 보는 시각을 넓혀야 한다. 대국주의(大國主義)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어서는 안된다는 저우언라이의 말은 40여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지금도 생명력있게 울리고 있다.

〈이연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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