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씨의 걱정

서배원 논설위원

같은 말이라도 누구 입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진정성과 무게가 달리 느껴진다. 그래서 울림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크다.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거부감을 낳고, 힘들여 말해도 아무 메아리가 없는 사람도 있다. 반면 시선을 집중시키고 큰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의 바탕은 아마도 말하는 사람의 인품과 평소의 바른 처신에서 비롯된 신뢰일 것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이사회 의장인 안철수씨는 기업인 가운데 언론으로부터 말의 진정성과 무게를 지속적으로 인정받는 드문 존재다. 경력이나 기업 규모 등 외적 조건으로 치면 그 만큼 대우받을 까닭이 없다. 언론에 잘 보이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그를 신뢰하는 이유는 국가정책에 대한 사심없는 충고와 건강한 그의 경영철학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삶의 자세나 겸손함에서 비롯된 좋은 이미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주 그가 2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국내 언론과 가진 인터뷰의 전문을 꼼꼼히 봤다. 그는 귀국해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로 일하게 된 배경, 국내 벤처기업의 경영환경과 문제점 등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주목을 끈 것은 아무래도 새 정부 출범으로 변화된 최근의 국내 상황과 관련한 발언이었다. 좀 길지만 거두절미하지 않고 옮기면 이렇다.

- 공정위 ‘친기업 코드’ 자기부정 -

“작은 정부가 실제로 해야 하는 일은 쓸데 없는 규제 대신에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말 잘못한 사람은 일벌백계해야 한다. 참여정부 때도 그렇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규제 철폐가 감시 기능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 (나는) 보수, 진보 누구편도 아니다. 혹시나 규제만 풀고 감시는 안 할까봐 그게 두렵다.” 감시가 필요한 부분으로는 대기업·공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거래 관행, 주식시장 등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이런 말도 했다. “벤처기업을 만들면 수익을 창출해서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그런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기업·공기업에서 다 가져간다. (벤처는) 부가가치는 고려하지 않고 인건비만 받는 인력파견 업체가 된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이런 구조는) 큰 덩치들이 잘 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그네들에게도 안 좋다. (중소·벤처기업에서 먹고사는) 2000만명이 못 벌면 구매력이 떨어진다.”

안씨는 과거에도 대기업·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 관행, 이로 인한 구조적 폐해가 중소·벤처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가 새 정부의 움직임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런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겠다는 걱정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안씨가 특정 부처를 겨냥하고 발언한 것은 아니겠지만 특히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근 움직임과 맥이 닿는다.

공정위는 최근 담합 등 기업의 불공정거래를 현장조사하려면 더 많은 결재 라인을 거치게 하고, 서면조사로 부족할 경우만 현장조사하고, 조사 기간을 늘리려면 별도 승인을 받게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조사는 사실상 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들린다. 불공정 하도급 직권조사도 ‘다수 수급기업이 법위반 혐의를 지적한 경우’ 등으로 제한해 하청기업들이 회사 문 닫을 각오하고 고발하지 않으면 나설 생각이 없음을 드러냈다.

- 규제 철폐가 감시포기 아니다 -

공정위는 이미 새 정부 들어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상호출자 금지 대상 축소, 지주회사 제한 완화 등 무엇을 “하겠다”보다 “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가장 많이 쏟아낸 곳 가운데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건 친기업 정책에 대한 공정위의 ‘코드 맞추기’는 이제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공정한 시장질서를 유지해 자유시장 경제를 떠받치는 것이 공정위의 핵심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선수로 뛰는 운동장에서 공정위는 심판이다. 기업 담합이나 불공정 하도급 관행 등 우리나라 시장질서는 공정경쟁 풍토와 여전히 큰 거리가 있다. 세계가 불공정 거래 처벌과 시장 감시 강화에 나서는 가운데 불공정 행위가 고질인 우리나라의 공정위가 감시의 눈을 감겠다니 안씨 같은 이의 걱정이 커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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