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카톡

박문규 논설위원

요즘 장안의 화제는 카카오톡이다.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은 최근 정보기술(IT) 업계의 핫이슈다. 합병회사인 다음카카오가 어떤 서비스로 ‘공룡 포털’ 네이버와 경쟁할지가 모바일 업계의 주 관심사다. 카카오는 다음 인수를 통한 우회상장으로 10조원짜리 황제주로 등극했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은 일약 2조원대 자산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을 박차고 나와 창업 신화를 일군 그의 성공 스토리는 샐러리맨의 우상이기도 하다.

[경향의 눈]오만한 카톡

카톡의 유명세를 더 키운 것은 사이버 검열 논란이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집시법 위반 혐의 수사가 엉뚱하게 카톡으로 불똥이 옮겨붙었다. 그가 “당국의 무분별한 사이버 검열로 두 달치 카톡 내용과 지인 3000여명의 신상정보가 털렸다”고 밝힌 게 진원지다. 검찰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박근혜 대통령 말 한마디에 호들갑을 떤 것도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다음카카오가 부랴부랴 수습책을 내놨지만 여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당국의 통신 검열은 어제오늘의 얘기도 아니다. 매년 수천건의 통화내역 조회와 감청 영장이 남발되는 세상이다. 수사편의라는 미명 아래 사생활 보호는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이런데도 카톡 사용자들이 도·감청 공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카톡은 가입자가 1억20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남녀노소 모두가 이용하는 국민 메신저다. 대화내용 역시 문자메시지나 전화통화에 비해 훨씬 시시콜콜하다.

이용자들의 불신을 키운 것은 카톡의 대응이다. 다음카카오가 검찰의 사이버대책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카톡의 행태는 가관이다. 수사에 협조한 것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정 부대표의 영장 집행은 당국의 몫이다. 수사관이 영장을 제시하고 본사 서버에 보관된 대화 내용을 복사하는 게 일반 상식이다. 회사는 이 과정에 이용자 권익이 침해받지 않는지를 철저히 감시하는 게 본연의 임무다. 하지만 이번 수사는 전화 한 통화로 모든 게 해결됐다. 경찰은 사무실에 앉아 정 부대표의 감청자료를 건네받았다. 회사 법무팀이 알아서 서버에 보관된 내용을 뽑아줬다고 한다. 고객의 사생활 보호에 앞장서야 할 회사가 수사당국과 한통속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 벌어진 수뇌부의 말장난은 낯 뜨거울 정도다. 회사 대주주인 이재웅씨는 영장 집행을 놓고 논란이 일자 페이스북에 “그럴려면 이민가셔야죠”라는 글을 올렸다. 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안이한 상황 인식을 문제 삼자 “국가권력의 남용을 탓해야지, 저항하지 못하는 기업을 탓하나요”라며 한 말이다. 또 회사 법률자문을 맡은 변호사는 “(다음카카오가)뭘 사과해야 하는 건지. 자신의 집에 영장이 들어와도 거부할 용기가 없는 중생들이면서…”라고 했다. 경찰 말 한마디에 알아서 긴 다음카카오가 내놓은 변명치고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정보 보관의 적법성 여부다. 다음카카오는 그간 고객들의 대화내용 3~7일치를 본사 서버에 보관해왔다. 현행 법 어디에도 개인적 대화내용을 보관하라고 한 조항은 없다. 회사는 “고객 서비스 차원”이라고 했다. 대화 상대방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받아보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임시 저장했다가 재전송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고객의 사전 동의를 받는 것은 필수다. 보관을 원치 않을 경우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도 기본이다. 하지만 고객 동의 절차는 회사 약관 어디에도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불법이다. 카톡 이용자인 김미희씨는 “카톡은 내게 그저그런 놀이의 하나일 뿐”이라며 “장난삼아 한 얘기가 범죄수사의 증거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가 나한테 얘기해줬냐”고 했다. 회사 측은 대화내용을 암호화하겠다고 하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카톡은 고객 동의 없이 대화 내용을 보관할 이유와 자격도 없다.

카톡은 이동통신사들의 유료 문자라는 틈새시장을 파고든 일종의 기획상품이다. 신출귀몰한 아이디어도 아니다. 초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유사상품’이 차고 넘친다. 김 의장이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은 것도 따지고 보면 충성스러운 이용자들 덕이다. 로열티의 기본은 고객의 신뢰다. 세상 어디에도 영원불멸의 신화는 없다.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 IT 시장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도토리로 유명한 싸이월드 신화의 붕괴도 관료화된 조직문화에다 고객 신뢰가 무너진 탓이다. 카톡 이용자들은 김 의장에게 “언제까지 오만과 독선을 고집할 건가”라고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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