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불패론 끊어야 한다

박용채 | 산업부장

작년 말쯤 지인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다 부동산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세계 금융위기와 더불어 서울 강남 아파트값이 급락하던 과정이었다. 한 친구가 흥미로운 화두를 꺼냈다. ‘1년뒤 강남 아파트값은?’ 그러면서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말했다. 금리 하락으로 시중에 돈이 넘쳐나면 부동산으로 쏠릴 것이고, 교육열까지 감안하면 강남 아파트값은 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식견보다는 감(感)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상식적으론 오를 수 없는 집값

당시 필자의 의견은 ‘집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것이었다. 위기가 지속되면 소비는 위축되고, 과도한 가계부채, 국민소득에 비해 턱없이 높은 집값, 인구 고령화 시대 도래 등을 감안하면 부동산 전성시대는 끝났다는 귀결이었다. 반토막난 일본의 사례를 설명하며, ‘집은 사는(買) 곳이 아니라 사는(住) 곳’이라는 어쭙잖은 설명도 덧붙였다.

요즘 ‘그 친구’에게 필자는 영락없는 ‘돌팔이’다.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가 2006년 정점보다 더 오른 점을 감안하면 놀림감이 돼도 할 말이 없다.

물론 강남의 집값 폭등이 전국적 현상은 아니다. 지방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넘치고, 서울에서도 냉골이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위기는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는 게 일상적이지만 찜찜한 구석은 남는다. 정부의 규제완화 효과를 얕본 것인가, 부동산 불패신화를 과소평가한 것인가, 그도 아니면 돈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꾼’들의 실체를 몰랐던 것인가.

되짚어 보자. 강남권 집값 급등은 부동산 거품 해소 과정에서 나온 정부의 경기부양, 예컨대 전방위적 규제완화 조치와 맞물리면서 나온 현상이다. 외환위기 이후 급반등에 성공했던 과거 사례, 대기업의 잇단 호실적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탈진 상태였던 강남 부동산시장이 앰플 주사 몇번 맞으면서 훨씬 커져버린 형국이다.

미처 감안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첫째가 정치적 요소다. 사실 ‘부자 정권’에 집값 하락은 참을 수 없는 사안일 게다. 실제 종부세의 사실상 폐지로 강남 아파트 구입 부담은 크게 사라졌다. 미국의 경우 주택가격이 폭락했지만 보유세를 깎아줬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또 있다. 부동산은 그 어느 분야보다 이해관계자가 많다. 건설업자, 중개업자 등 이른바 부동산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시장 침체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부동산 거품 뒤 일부 언론인들 사이에서 “언론이 집값 폭등의 ‘삐끼질’을 했다”는 자성이 있었다. 실수요적 관점보다 투기적 관점의 기사를 통해 소비자들을 오도했다는 질책이었다. 일부 한국 언론들도 부동산 강좌 등 관련 사업을 많이 한다. 더구나 부동산 광고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형 신문사들의 경우 시장 침체는 견디기 힘들다.

정부 ‘앰플주사’ 맞고 다시 광풍

일본 금융연구소는 과거 일본 부동산 거품의 메커니즘을 장기간의 금리인하, 세제 및 규제 미비, 금융기관 대출경쟁, 위험관리 기능 약화 등 4가지로 설명한 적이 있다. 요즘 우리 상황과 비교해 봐도 크게 차이는 없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현 단계에서 확실한 것은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미 출구전략 얘기도 낯설지 않을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한국이 일본의 재정악화 과정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가 판박이라는 설명이다. 일본의 경우 경기부양을 위해 100조엔(약 1300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물거품처럼 날아갔다. 양극화로 치닫던 아파트값도 ‘올 추락’으로 귀결됐다.

강남권 아파트값의 전망은 쉽지않다. 다만 최근 값이 비정상적이라는 것만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시 광풍이 불고, ‘부동산 불패가 더 강한 신화’로 유지되면 훗날 사회적 비용만 더 커진다. 다만 이는 당위론이다.

사실 그동안 아파트값의 결정 요인은 당위론보다 심리가 우선해왔다. 지인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이 폭탄돌리기의 끝인지, 아니면 또 한 순배의 여유가 있는지. “강남 불패론이 끊겨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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