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스럽지 않은 인사’

양권모 정치부장

‘천성관 인사’가 파탄난 것은 기술적 검증의 탓이 아니다. 집권 이래 시종해 온 ‘이명박스러운 인사’의 귀결이다.

「PD수첩」과 용산참사 사건 등 이 정부를 대변하는 공안 사건을 진두지휘한 공안검사를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른바 ‘MB 법치’ 구현의 적임자로서 찾은 것이다.

검찰의 기수 파괴, 충청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스타일이 반영된 파격 인사”라는 청와대의 배경 설명은 ‘위장’으로는 그럴싸할지 모르지만, 인사의 본질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천성관 인사’는 청와대가 주창한 “이명박다움의 회복”이 아니라, 실로 ‘이명박스러움’의 지속이다. 가령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보다 심각해진 이 정부의 TK 편중과 독식을 개선하고 완화하겠다는 취지였다면, 충청이 아니라 호남 출신을 찾는 길이 더 적합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지역 균형과 안배 인사의 관건은 ‘영남의 호남’이거나, ‘호남의 영남’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인사의 본질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확인됐다. 검찰총장 후보자는 이미 널찍한 아파트를 강남 요지에 갖고 있음에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차용증도 없이 거액의 빚을 내 28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고도 왜 문제가 되는지 알지 못했다. 이 나라 최고급 결혼식장을 “조그만 교외”라고 간주했다.

지난해 조각 때 이 정부의 장관으로 내정된 이들이 “부부가 교수를 25년했는데 30억원 재산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인 셈”이라거나, “서초동 오피스텔은 유방암이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거나,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고 한 인식과 빼닮았다.

예상 밖으로 끝난 ‘천성관 파동’

실상 검찰총장 후보자뿐 아니라, 이번에 새 국세청장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많은 책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강남에) 오피스텔을 구입했다”고 했다.

그럴 터이다. 이 대통령에게도, 청와대의 검증 담당자들에게도 천성관 후보자 정도의 사안들이 비판받는다는 게 이상할 것이다. “일을 하려다 보면 접시를 깰 수 있다”는, 맡은 일만 잘할 수 있다면 도덕적 처신 같은 것은 후순위로 치부하는 ‘인사 기준’에 비춰보면 하찮았을 게다.

그랬기에, 애초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청와대는 “심각한 결격 사유는 아니다”라고 넘기려 했다. ‘부자 여당’의 담당자들은 “그 정도면 청렴하고 검소하게 살아왔다는 증거”라고 당당했다.

한데, 여기서 이 대통령이 경험칙과 예상을 배반했다. 이 대통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유로 그 검찰총장의 내정을 철회했다. 고위 공직자의 처신과 모범, 거짓말을 문제 삼았다.

이건 지금껏 봐온 ‘이명박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돌연한 변신의 진짜 까닭은 알 도리가 없다. ‘천성관 파동’을 방치할 경우 대단한 성공작이라고 자평하는 이른바 중도실용과 친서민 행보가 사기극이라는 의구를 받을 것을 걱정했을 수도 있다. “300억원대 재산을 기부한 효과를 한방에 까먹은 것”에 대한 진노인지, 조만간 있을 청와대와 내각 개편의 구상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한 읍참마속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이 대통령이 도덕성과 처신을 이유로 삼고, 비등하는 여론을 전례없이 수용하는 모양새로 ‘천성관 인사’를 철회한 것 자체는 무작정 폄훼할 것이 아니다. ‘현재까진’, 어쨌든 평가할 대목이 있다.

靑·내각 개편이 ‘진정성’ 시험대

그리고 그 ‘진정성’을 판가름할 것이 곧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인사쇄신을 기치로 곧 청와대와 내각을 개편할 것이라고 한다. 그 인사에서 이 대통령의 ‘천성관 파동’ 대처가 지명권자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호도책인지, 아니면 지난 인사실패의 반성을 기운으로 새삼 도덕성을 우선하고 소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전환인지 확인할 수 있을 터이다. 그가 내세운 ‘친시민’과 ‘근원적 처방’의 정체도 드러날 것이다.

결국 그간의 강부자·고소영 식 ‘이명박스러운 인사’를 하느냐, 아니면 이번 검찰총장 후보자 내정 철회에서 보여준 ‘이명박스럽지 않은 인사’를 하느냐의 관건이다. 눈뜨고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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