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한 공기 반. 한국인의 1인당 하루 쌀 소비량(2020년 기준)이다. 한국인의 주식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사실 쌀 소비량 급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5년 128㎏이던 연간 1인당 소비량은 2015년 62㎏, 2020년에는 57㎏까지 줄었다. 밥 한 공기가 100g 정도인데 1인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이 158g이다. 식습관의 서구화, 먹거리의 다양화 등에 따른 변화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었을까. 육류와 밀이 대표적이다. 고기의 연간 1인당 소비량은 1970년 5.3㎏에서 2020년 54㎏으로 급증했다. 빵과 면, 과자의 주원료인 밀도 1인당 연간 소비량이 33㎏으로 꾸준한 증가세다. 그런데 밀의 자급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1년 1.9%에서 2020년에는 0.8%에 불과하다. 쌀·콩·옥수수와 함께 4대 곡물 중 가장 낮다. 국산 밀 급감으로 토종 밀 종자마저 사라질 위기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밀 자급률 향상을 위한 대책을 26일 내놓았다. 자급률을 2025년까지 5%로 끌어올리는 등 주요 식량 작물인 밀의 자급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밀 생산단지 확대, 품질 제고를 위한 품종 개발과 기술지원, 정부 비축물량 확대 등을 밝혔다. 밀 산업 진흥책은 반갑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시민사회계에서 국산 밀 산업의 중요성을 외친 게 30년 전이다. 자급률을 높이고 토종 밀 종자를 확보하자며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창립된 게 1991년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진흥책을 내놓으니 뒷북 행정이 아닐 수 없다.
비단 밀뿐이 아니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특히 곡물자급률(사료 포함)은 겨우 21%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등 주요 국제기구들은 식량자급률 향상을 통한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식량 수출국가들은 걸핏하면 수출을 제한한다. 식량은 이미 무기화됐다. 주요 국가들이 식량 자급 및 안보 대책을 강구하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의 전체 예산 대비 농업예산은 겨우 2%대에 불과하다. 반도체나 자동차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아침으로 반도체를, 점심으로 자동차를 먹을 수는 없다. 식량자급책을 심각하게 고심할 때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