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교황청 ‘동성 커플’ 승인

이명희 논설위원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2년 12월25일 바티칸시티 교황청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2년 12월25일 바티칸시티 교황청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결혼이나 교회 의식 아니면 가능합니다.”

교황청은 18일(현지시간) 발표한 ‘간청하는 믿음’이라는 선언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사제의 ‘동성 커플’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고 밝혔다. 교황이 교회의 전통을 뒤집고, 사제가 동성 커플에게 축복을 집전해도 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단서를 달았다. 교회 공식 행사에선 안 된다는 것이다. 혼인성사와는 다르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교황청은 “‘모든 피조물’이 축복의 대상”이라고 했다.

교황의 한마디는 그 자체로 큰 가르침을 준다. 역사적으로는, 오랫동안 동성애를 죄악시해온 가톨릭교회의 개혁과도 연결돼 있다. 역대 교황과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차별금지를 강조해왔다. 2013년 동성애자 사제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누구를 심판하리오”라고 답해 화제가 됐다. 그렇지만 교황청은 2021년 동성 결합(결혼)에 대해 가톨릭교회가 축복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비판을 받았다. 교황의 이번 결정은 이를 번복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성자’라는 즉위명처럼 지극히 평범한 행보로 지지를 받고 있다. 바티칸궁 대신 인근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고급 리무진 대신 소형 승용차를 타며, 축구에 열광하고 탱고를 즐긴다고 한다. 교황에 선출된 후 교회에 맞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파에 맞서 교회의 개혁을 이끌고 있다. 그래서 때론 교회 안팎의 걱정을 사는 교황의 파격이 더 빛나 보인다.

교황의 이번 결정으로 국내에서도 성소수자 인권 논의가 되살아날지 주목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동성애보호법’이라고 반대하는 국내 보수 개신교는 교황의 발언을 새겨야 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적 흐름에 한국 교계는 많이 뒤처져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재판위원회는 2019년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동환 목사에게 지난 8일 출교를 선고했다. 어느 쪽이 ‘하느님 사랑’에 가까운지 정말 묻고 싶다.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교황은 말한다. “나는 우리가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확실해요.” 그 말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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