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씨 자살

한국 야구 ‘황금세대 92학번’… 부상·방출·사업 실패 ‘비운의 야구스타’

박은경·이용균 기자

조성민은 누구

인기스타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던 최진실·진영씨 남매의 죽음에 이어 전 남편인 프로야구 스타 조성민씨(40)도 6일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는 신일고 재학 시절부터 강속구와 함께 수려한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한국 야구 ‘황금세대’로 불렸던 ‘92학번 세대’ 중 한 명이었다. 당시 고려대 조성민, 연세대 임선동, 한양대 박찬호를 비롯해 대전고를 졸업한 정민철, 부산고를 졸업한 염종석 선수 등이 모두 92학번 세대였다. 조씨는 고려대 졸업 뒤 1996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당시 받은 계약금 1억5000만엔은 역대 신인 최고 수준이었다. 이듬해인 1997년 마무리투수로 활약했고, 1998년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됐다. 전반기에만 7승을 거두는 좋은 활약으로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에 선발됐다. 그러나 팔꿈치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올스타전에서 무리한 투구를 했다가 결국 인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야구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2002년 요미우리에서 방출된 뒤 슈크림빵 관련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 또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고 최진실씨의 전 남편이자 전 프로야구 선수인 조성민씨가 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아파트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는 1996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 최진실씨의 전 남편이자 전 프로야구 선수인 조성민씨가 6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아파트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는 1996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발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최진실·진영 남매 이어
우울증 못 이기고 끝내 자살
유례없는 ‘기구한 가족사’

조씨는 2005년 한화 김인식 감독의 배려 덕분에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했다. 2007년까지 3시즌 동안 3승4패, 방어율 5.09를 기록했다. 이후 방송 해설위원 등을 지낸 뒤 2011시즌 두산 2군 재활코치로 복귀했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조씨는 1998년 12월 최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조씨는 KBS2 <행복채널>에 함께 출연한 계기로 최씨를 알게 됐다. 스무 살이던 1988년 CF로 데뷔한 최씨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가 인기를 얻은 후 연예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두 사람은 2000년 12월 결혼했다. 당대 최고 여배우였던 최씨와 일본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투수의 결혼은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았다.

결혼식은 화려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조씨는 2002년 12월 파경을 맞았다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후 두 사람은 별거생활을 해왔다. 2004년 8월 조씨가 최씨의 집에서 폭력을 휘둘러 긴급체포됐고, 결혼 3년9개월 만인 2004년 9월 협의이혼했다. 환희(12)와 준희(10) 남매를 둔 상황이었다. 이후 최씨는 연예활동을 접고 연기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때 누나 곁에서 힘이 되어준 것이 동생 진영씨다. 동생의 도움으로 최씨는 2005년 KBS2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맹순이’ 역으로 시청자들을 울리며 재기에 성공했다. 2008년에는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로 ‘줌마렐라(아줌마+신데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듯했으나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마흔이었다. 자택에서 숨진 누나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동생 진영씨였다.

2008년 10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최진실씨 발인날 최진영씨가 누나 영정을 들고 오열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8년 10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최진실씨 발인날 최진영씨가 누나 영정을 들고 오열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9년 8월에는 경기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에 있는 최씨의 납골묘가 파헤쳐져 유골함을 도난당했다. 경찰 수사 결과 극성팬이 유골함을 훔쳐간 것으로 드러났다. 유골함은 도난 21일 만에야 되찾아 원래 자리에 다시 안치됐다.

진영씨는 1999년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연예계에서 최씨 남매는 우애가 자자하기로 유명했다. 진영씨는 조카들을 돌보며 누나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했지만 한 방송에서 “악몽에 시달려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밝혀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진영씨는 “누나가 생전에 소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겠다”며 2009년 한양대 예술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새로운 기획사와 계약하는 등 열의를 보였으나 누나가 떠난 지 1년5개월 만인 2010년 3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동생은 누나 옆에 묻혔다.

2010년 3월 목숨을 끊은 최진영씨 영정이 유족 품에 안겨 장지인 경기 양평군 갑산공원에 들어서고 있다. | 뉴시스

2010년 3월 목숨을 끊은 최진영씨 영정이 유족 품에 안겨 장지인 경기 양평군 갑산공원에 들어서고 있다. | 뉴시스

2008년 최씨가 사망한 후 조씨는 두 자녀에 대한 친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친권 문제가 논란이 되자 조씨는 스스로 친권을 포기했다. 이후 친권자가 사망하면 이전 배우자가 자동으로 친권을 갖게 되는 일을 막도록 하는 소위 ‘최진실법’이 만들어졌다.

조씨는 2011년 초부터 환희, 준희 남매를 가끔 만나며 정을 쏟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가을에는 환희 남매의 운동회에 찾아가서 응원을 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환희, 준희 남매는 지난해 9월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 출연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한 듯 담담하게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란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이런 인사말도 남겼다.

“엄마가 좋은 재능과 외모를 주셔서 감사해요. 하늘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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