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의 ‘세상 밖 세상’ 경험…“의사로서 사회를 보는 눈 넓어져”

이진주 기자

공중보건의 3년 기록 담은

‘진짜 아픈 사람 맞습니다’ 펴낸 최세진씨

전남 순천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3년간 대체복무를 한 의사 최세진씨는 “교정시설에서 일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많이 넓어졌다”면서 “향후 중독 환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전남 순천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3년간 대체복무를 한 의사 최세진씨는 “교정시설에서 일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많이 넓어졌다”면서 “향후 중독 환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parkyu@kyunghyang.com

개인·사회의 건강은 상호작용
“왜 범죄자를 세금으로 치료”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의사는 치료 필요 여부만 판단
중독환자 위한 사회운동할 것

“교도소에서의 생활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화두를 남겼다고 생각해요. 개인과 사회의 건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말이죠. 서로를 위한 치유 활동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하고 싶어요.”

순천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보낸 3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 <진짜 아픈 사람 맞습니다>(어떤책)를 펴낸 최세진씨(32)는 지난 21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최씨는 2018년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체복무로 교정시설을 지원했다. 한국에서 의사가 대체복무를 하는 방법은 크게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병역판정검사 전담 의사가 있다. 교정시설은 다른 곳에 비해 업무 강도가 세고 수용자를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 등으로 의사들이 기피하는 근무지로 알려져 있다. 교도소 근처에도 가본 적 없었던 최씨가 교정시설을 지원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영향이 컸다고 밝혔다.

“이 책이 제 삶의 방향을 바꾸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에게 조명을 드리우는 이 책은 단순히 익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아요. 책 속에서 지적한 건강 문제를 일부분이라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었어요.”

교도소에서의 ‘세상 밖 세상’ 경험…“의사로서 사회를 보는 눈 넓어져”

최씨는 2018년 4월 순천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대체복무를 시작했다. 상주 의사가 없는 순천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는 최씨가 유일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일 80여명의 수용자를 진료했다. 야간에도 응급진료를 요청하는 이들이 많았다.

경범죄자부터 사형수까지 다양한 수용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그중에는 상습적으로 진통제나 마약류성 약을 더 달라고 하거나 스스로를 정신질환자나 성소수자라고 주장하며 방 변경을 요청하거나 병동에 보내달라는 수용자들도 있었다. 교정시설에서 의사로 일한다고 하면 ‘왜 범죄자를 국민 세금으로 치료해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당연히 적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제 판단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사는 지금 치료가 필요한가 아닌가를 첫 번째로 판단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테러리스트를 여느 환자와 똑같이 대하는 ‘국경없는의사회’를 많이 생각했어요.”

최씨는 교정시설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약 남용을 막기 위해 수용자들에게 ‘치료를 위한 약이 아닌 이상 장기 복용이 필요하지 않다’는 내용의 교육을 했다.

약은 한 달씩 장기 처방하기보다는 가능하면 5일씩 끊어서 지급했다. 교도소 측의 허락을 받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교육을 의뢰하기도 했다. 최씨는 “교육 후 생각보다 많은 수용자들이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며 “비록 나쁜 짓을 했지만 죽어서는 남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 의외였다”고 밝혔다.

세부지침이 없어 야간 진료 수당을 받을 수 없었던 공중보건의사들의 초과근무 수당도 최씨가 교정본부에 치열하게 요구해 적용됐다. 수용자의 의료처우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최씨는 2020년 법무부 장관상을 받았다.

최씨는 지난 4월 서울구치소 근무를 마치고 지금은 서울대병원 인턴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교정정신의학>이라는 외국 의학서적의 번역을 준비 중이다.

“교정시설에서 일하면서 이공계생이나 의사로서만 봐왔던 세계 밖의 세계를 경험한 것 같아요. 사회를 보는 눈이 많이 넓어졌고요. 향후 중독환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고 싶어요. 중독환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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