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정치’의 함정

김진우 기자

전화조사 무응답 80%·질문 방법에 따라 결과도 달라져

난국 때마다 의사결정에 활용… ‘정치적 편의주의’ 지적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9일 기초선거 ‘무공천’ 여부를 묻는 당원투표와 여론조사에 들어갔을 때 설문 문항을 본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게선 “사실상 공천하라는 내용”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새누리당은 공천을 강행하고 있다’ ‘공천을 안 하면 불공정한 선거가 되므로’라는 표현 등이 ‘공천 찬성’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설문에 편향성이 있어 결과에 흔쾌히 승복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급기야 설문 문항 작성에 참여했던 최원식 전략기획위원장은 10일 문항 조정을 제대로 못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과 함께 사의를 밝혔다.

애초부터 여론조사로 정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대체한다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많다. 특히 당의 공천 여부를 국민 여론에 묻는 식의 ‘여론조사 정치’에 함정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가운데)가 10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으로 결론 난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결과가 보고된 긴급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 질문을 받으며 자리를 나서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가운데)가 10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으로 결론 난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결과가 보고된 긴급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 질문을 받으며 자리를 나서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최근 정치권에선 정치적 고비마다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002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를 통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에서도 여론조사를 추진한 바 있다. 당내 경선이나 단일화를 할 때에도 여론조사가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한다.

새정치연합은 광역단체장 선출 4가지 방안 중 2가지에 국민 여론조사가 50%씩 들어 있다. 100% 여론조사 방식도 포함됐다. 새누리당은 제주지사 후보 선출을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한다. 기초단체장 경선에서 ‘여론조사 100%’를 채택한 지역도 많다. 그야말로 여론조사 만능주의 시대인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참고자료에 불과한 여론조사로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을 대체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정 이념과 목적을 지닌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을 여론에 의지하는 것은 정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은 정치적 편의주의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희웅 정치컨설팅 민 여론분석센터장은 “여론조사는 숙의를 통한 합의라는 ‘숙의 민주주의’를 저해한다”며 “합의와 타협을 외면해놓고 정당정치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기술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여론조사가 ‘객관적인 판관’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2010년 6·2 지방선거처럼 여론조사 예측과 선거 결과가 정반대로 뒤바뀐 경우도 적지 않다.

현행 여론조사는 오류와 허점들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선 무작위 확률표집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면 표본수 1000명 정도 조사에 3~4일이 걸리기 때문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체 무응답 비율이 80%에 이르러 대표성 왜곡도 불가피하다. 특정 지지층이 휴대전화 착신 등을 통해 여론조사에 의도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아울러 여론조사 요일이나 시간대, 질문의 배치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특성도 변수다.

실제 새정치연합의 ‘무공천’ 여론조사는 설문 문항이 이미 알려진 데다 공천·무공천 여론전이 치열했다. 조사도 9일 하루 만에 이뤄졌다.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외부변수들이 존재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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