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주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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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신임대표

보수야당의 대표로 36세의 이준석이 당선된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세대 교체보다는 이념 교체에 무게중심을 두는 해석도 적잖다. 실제로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대표는 13일 “이제는 이념보다는 이슈파이팅이 주가 될 것이라는 판단 속에서 나만의 리더십 스타일을 구축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는 이를 위해 “그동안 지켜본 여러 당대표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호욱 선임기자

보수야당의 대표로 36세의 이준석이 당선된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세대 교체보다는 이념 교체에 무게중심을 두는 해석도 적잖다. 실제로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대표는 13일 “이제는 이념보다는 이슈파이팅이 주가 될 것이라는 판단 속에서 나만의 리더십 스타일을 구축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는 이를 위해 “그동안 지켜본 여러 당대표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호욱 선임기자


대한민국이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제1야당 당대표 선출로 들썩이고 있다. ‘0선’의 원외(院外)인사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대표(36)의 등장은 변화와 쇄신을 바라는 보수층, 특히 젊은층의 열망이 투영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10년 전 ‘박근혜 키드’로 정계에 깜짝 입문한 그는 당대표 경선TV토론회에서 특유의 직설적이고 화려한 언변으로 중진들과 대등한 설전을 벌여 주목받았다. 그에 앞서선 민감한 젠더 이슈에 대해 남성 대변자를 자처해 2030 남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영리함을 보였다. 토론배틀, 공직자 자격시험 등 공약과 국회에 지하철과 따릉이를 타고 출근하고 호남 먼저 방문하는 파격적 행보 이면에 경쟁·능력 지상주의자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당대표 당선 후 첫 주말인 지난 13일 이 대표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나고 16일에 전화로 추가 질문을 했다. 4시간가량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리더십, 내년 대선과 대선 주자들, 공정 경쟁과 소수자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성장과정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 깊은 인상
2030 코어 지지층 확장해 나만의 리더십 구축할 것

- 오늘부터 업무를 시작했는데, 해볼 만한가요.

“당대표는 처음이지만 비상대책위원이나 최고위원은 해봐서 당대표 여러분을 봐왔어요. 각자 스타일과 일처리 방식에 따라 성패가 갈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벤치마킹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특히 벤치마킹하나요.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분은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죠. 당신이 오른쪽(보수)의 정체성을 의심받을 리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왼쪽(진보)으로의 확장의지를 갖고 파격적 정책들을 냈거든요. 거꾸로 황교안 대표는 보수층의 지지가 있는데도 그러지 못했어요. 그건 개인의 선거에 대한 감(感)일 거예요. 이제는 이념보다 이슈파이팅이 주가 될 것이라는 판단 속에서 저는 저만의 영역을 구축해야죠.”

-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까.

“저는 2030세대에 어느 정도 닻을 박아 코어 지지층이 형성됐다고 봐요. 젊은층이 원하는 건 자기들이 원하는 어젠다를 계속 다뤄주는 거예요. 그것을 제대로 해나간다면 저도 흔들리지 않고 저변을 확장해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 당내 나이 든 중진들이 많은데 이 대표의 리더십이 잘 통할까요.

“제가 정치패널로 활동하면서 항상 50, 60대분들을 상대해왔고 그분들로부터 ‘싸가지’ 없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다 딛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렇기에 당대표로서의 리더십도 저만의 스타일을 구축할 겁니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도 여성이라고 무시받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선거여왕으로 자리매김된 후부터는 누구도 그 리더십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어요.”

- 당선을 확신한 시기나 순간은 언제였나요.

“대구 서문시장(5월30일)에 갔을 때예요. 군중이 몰리면서 사진만 500장 이상 찍었을 거예요. 상인회에 계신 분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하시던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하셨어요.”

이 대표는 전당대회 직전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에서 차기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 조사 결과 57%나 획득했다. 여기엔 지난달 20일 유튜브를 운영하는 개그맨 강성범씨의 화교 발언도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가 화교라는 설에 이 대표가 양친 모두 대구 출신임을 밝히자, 강씨가 “대구보다는 화교가 낫다”고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를 언론이 보도하면서 이후 TK에서 이준석 하면 ‘대구아가(대구 아이 아니냐)’라며 지지율이 치솟았다.

- 정치 입문 10년만에 초고속으로 당대표까지 올랐어요, 이 속도면 대통령 도전도 금방이겠습니다.

“제가 당대표에 도전한 것은 충분한 이력과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해서인데, 그 이상의 도전에 대해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성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겁니다. 정치인은 항상 더 높은 목표를 꿈꿔야 자기계발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 보수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보수가 지켜야 할 것은 구체제가 아니라 변화와 성장에 대한 확신이에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세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타인의 몫을 감소시켜야 내 몫이 많아진다는 약탈적 분배의 개념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갈등이 생긴다고 봐요. 보수의 역할은 지속적인 성장 담론 제시와 창의적 해법을 통해 국민 모두가 삶이 나아지고 있음을 체감케 하는 거예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내년 대선까지 변수가 굉장히 많다”며 “윤석열 총장이 지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 탓에 반부패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이기 때문에 전장이 바뀌면 각광받는 선수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당대표가 더 적극적으로 영입 액션을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공정 경선 원칙을 말하며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내년 대선까지 변수가 굉장히 많다”며 “윤석열 총장이 지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 탓에 반부패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이기 때문에 전장이 바뀌면 각광받는 선수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당대표가 더 적극적으로 영입 액션을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공정 경선 원칙을 말하며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윤석열 입당 강제할 수 없어...특정주자 선호, 당대표로서 부적절
안철수, 국민들에 식언하는 모양새 되지 않게 합리적 판단 할 것

- 내년 대권 창출을 못 하면 조기 정계 은퇴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

“제가 대선을 그르칠 것으로 위기를 조장하는 분들의 발언들에 대응하기 위해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고요. 대선에서 지면 당연히 당대표직에선 퇴장할 겁니다. 정계 은퇴까지는 아니고요.”

-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8월 말까지 국민의힘 경선 버스에 탑승하지 않으면 정시에 버스는 출발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어요. 윤 전 총장 없이도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나요.

“변수가 굉장히 많다고 봐요. 대중지지율이 치솟았다가 꺾인 사례도 많이 봤고요. 윤 총장이 지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위선 탓에 반부패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예요. 전장이 바뀔 때마다 각광받는 선수는 바뀌어요. 지금 이 전장이 유지된다면 윤 총장이 유력하지만, 디테일한 경제 등이 화두가 되면 윤 총장은 그에 대한 전문성이 없기에 당황할 수 있죠. 그러면 다른 분이 주목받게 되겠죠. 저는 오히려 윤 총장이 제대로 된 보좌를 받고 있는 것인지 최근 의구심이 들었어요.”

- 왜요.

“윤 총장은 우당 이회영기념관 개관식(6월9일) 참석으로 퇴임후 첫 공개 행보에 나섰으면서도 대선 출마에 대한 질문에 모호하게 답했어요.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같은 질문공세를 예상하고 답변도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안 나타나는 게 나았죠. 지금은 윤 총장의 대변인(이동훈)이 선정됐고 정리된 메시지가 나오니까 긍정적이에요.”

- 윤 총장은 6월 말~7월 초 대권 도전 공식 선언을 검토 중이지만 대권 도전 선언이 곧 국민의힘 입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어요.

“본인의 정치적 행보는 본인이 무한책임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당 여부를 저희가 강제할 수는 없죠.”

-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계속 고공행진한다면 당대표로서 더 적극적인 영입 액션을 취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누군가를 당기려는 모습은 누군가를 밀어내려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부적절해요. 곧 선임될 인재영입위원장 등 저희 당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보직과 조직이 따로 있어요. 당대표로서 공정 경선을 관리해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특정 주자에 대한 영입이나 선호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워요.”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끝내 국민의힘과 합당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안 대표가 합리적 판단을 할 것으로 봐요. 합당 여부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보다는 조심스럽지 않겠어요? 그때도 무조건 합당하겠다는 취지로 말씀해놓곤 나중에 다른 말씀을 하셨잖아요. (이번에도 그러면) 그동안 국민에게 했던 말들에 대해 식언을 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안 대표가 그런 정치적 부담을 감당할 것 같지는 않아요.”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를 졸업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경쟁·능력 지상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이에 대해 그는 “왜 비판이 나오는지는 알겠지만, 그러면 그것보다 공정한 제도가 있느냐에 대해선 물음표”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의 경제력으로 따지자면 나는 금수저가 아니라 계급 사다리를 올라온 것”이라고도 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를 졸업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경쟁·능력 지상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이에 대해 그는 “왜 비판이 나오는지는 알겠지만, 그러면 그것보다 공정한 제도가 있느냐에 대해선 물음표”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의 경제력으로 따지자면 나는 금수저가 아니라 계급 사다리를 올라온 것”이라고도 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목동 시절, 내신경쟁이라 나름 공정했다는 것
실력주의 비판 알지만, 더 공정한 제도가 있나

이 대표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오성빌라 반지하집을 거쳐 한신아파트에 살았다. 아버지의 직장인 대우상사가 서울역 인근에 자리해 4호선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가장 싼 곳이 당시 4호선 종점인 상계동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혼 전 경북 안동여고 가정교사로 부임했던 어머니는 결혼 후엔 파트타임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 상계동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당시 한신아파트 500m 반경에는 학원이 없었어요. 유일한 학원이 컴퓨터학원이었죠. 하지만 엄마들의 교육열이 뜨거웠어요. 같은 아파트 단지의 대학 나온 엄마들이 과목을 나눠 아이들을 직접 가르쳤어요. 저희 부모님은 방 하나를 저와 제 여동생의 책방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덕분에 위인전 등 다양한 많은 책을 읽었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노원어린이글짓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요(웃음).”

- 아버지가 싱가폴과 인도네시아 주재원으로 발령나면서 5, 6학년을 해외에서 보냈다죠. 귀국 후엔 서울 목동으로 이사해 월촌중학교를 졸업했고요.

“아버지가 쌍용투자증권(현 신한금융투자)으로 이직하셨는데 여의도에 사옥이 있었어요. 여의도는 당시 상계동에서 출퇴근이 어려워 목동에 전세로 들어간 거예요.”

- 2019년 펴낸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월촌중 시절에 대해 “서로 비슷한 환경이라 위화감 같은 것이 없었다.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졌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회상했어요. 이 대표는 지금도 가장 강조하는 가치가 ‘공정’이에요. 그런데 고학력 아버지를 둔 덕분에 초등학생 때 해외에서 영어를 익히고 목동 수준의 교육환경을 누렸으면서 과연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희 때는 입시가 내신경쟁이었기 때문에 나름 공정했어요. 예를 들어 월촌중의 한 학년 700명 중 1등을 한 학생은 전체의 0.14%에 해당하거든요. 다른 학교에서 1등 하면 같은 내신등급을 받아요. 당시 과학고도 내신 반영이 많이 됐어요. 그렇게 따지면 학교 단위의 경쟁이기 때문에 비슷비슷했죠. 또한 부모의 경제력으로 계급수저를 따지자면 저는 금수저가 아니에요. 계층 사다리를 올라온 경우죠.”

- 이 대표가 좋은 환경적 조건과 행운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언제나 공정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이긴다고 생각한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제가 주장하는 실력주의나 엘리트주의에 대해 비판이 왜 나오는지는 알겠는데요. 그러면 그것보다 공정한 제도가 있느냐에 대해선 물음표예요. 예를 들어 다양성이라는 것을 내세워 줄 세우기나 능력주의를 경계하면, 어떤 식으로 사람을 뽑아야 하느냐, 또 올라갈 사람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느냐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답을 못 해요.”

-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은 없습니까.

“간혹 스트레스는 받지만 열등감은 아니죠. 저는 스트레스도 길게 가져가지는 않아요.”

- 서울과학고를 조기졸업한 후 카이스트에 한두 달 다니다 국비장학생으로 하버드대에 입학했죠.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복수전공했고 한인학생회장을 한 것으로 아는데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한국인학생회장을 한 것인데 별 의미 없어요. 한국인 유학생이 한 학년에 4~5명밖에 안돼 4개 학년을 합친 12~15명 중에서 회장을 한 것이거든요. 하버드는 100% 기숙사 생활이었고, 생활비는 논문을 써야 했던 4학년 한 학기 때를 빼곤 제가 교내에서 컴퓨터 고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 썼어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위해 귀국한 그는 2007년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을 설립했다. 그는 “배나사 활동을 통해 국가책임교육에 대한 신념이 생기는 등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위해 귀국한 그는 2007년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을 설립했다. 그는 “배나사 활동을 통해 국가책임교육에 대한 신념이 생기는 등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교육봉사단체 설립한 뒤 국가책임교육에 신념
평범한 이대남 삶 모른다? ‘민주화운동 해봤냐’ 같은 질문

그는 대학 졸업 후 군복무를 위해 귀국해 2007년 11월부터 2010년 9월까지 산업기능요원(병역특례)으로 대체근무했다. 그리고 2007년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중학생들에게 수학·과학을 가르치는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을 설립했다. 그는 “배나사 활동을 통해 교육에 관한 관점을 확실하게 정립했다”고 말했다. 2011년에는 전산프로그램 개발 벤처기업 ‘클라세스튜디오’를 창립했다.

- 배나사는 어떻게 설립된 건가요.

“병역특례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서울과학고 동문들에게 제안해 배나사를 설립했어요. 2005년과 2006년에도 저를 포함한 하버드대 학생들이 방학 때 서울 신당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봉사 프르그램을 여러 개 운영했는데 아주 잘됐거든요. 배나사는 처음엔 교사 8명과 학생 15명으로 시작했는데 수학 20점 받던 애들이 90점, 100점 받으니까 소문이 나면서 2년 뒤에는 학년당 150명의 학생을 가르쳤어요.”

- 성적을 끌어올린 비결이 뭐였습니까.

“배나사의 운영방식은 1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고 40문제를 내준 후 다 풀지 못하면 교사도, 학생도 집에 갈 수 없었어요. 그러니 풀 수밖에 없죠. 배나사 졸업생들이 한결같이 제게 해준 얘기가 있어요. 자신들에게 공부를 압박하며 잘하는 아이와 동일한 수준을 요구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다고요. 학교에선 우열반을 나눠 성적 하위권 학생들에겐 문제를 안 풀어도 된다며 빼주는 경우가 많았대요. 하지만 그건 시혜와 배려를 가장한 무시와 격리예요. 하등인간을 만드는 일이죠.”

- 이 대표가 얻은 건 뭔가요.

“많은 걸 배웠죠. 가령 연립방정식을 어렵게 설명해 아이가 문제를 못 풀면 저도 집에 못 가잖아요. 무조건 말을 쉽게 해야 할 뿐더러, 주의를 집중시키는 표정과 목소리의 톤과 억양 이런 게 그때 체화됐어요. 정치 데뷔 후 제가 출연한 방송을 모니터링하다가 깜짝 놀랐을 정도예요. 정치하는 데 최강의 무기를 얻은 거죠. 또 하나 중요한 건 국가책임교육에 대한 신념이 생긴 거예요.”

- 국가책임교육이라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민이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정 수준의 지식과 기술은 갖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거예요. 잘 따라오지 못한 학생에게는 다시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서 국가가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적어도 출발선에선 공정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교육 성과 미달자가 사회에 진출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봐요. 그래서 교육에 있어 성과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 이 대표는 경쟁과 실력주의를 내세우죠. 하지만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합격생이나 고 변희수 하사는 시험성적이나 직무수행능력 때문에 입학을 포기하거나 직장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닙니다만.

“트랜스젠더의 입학 반대를 주동한 건 학내 과격한 페미들이었어요. 그게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모순이죠. 트렌스젠더 합격생은 당연히 입학했어야 해요. 소수자 운동, 페미니즘 운동이 순수성을 가지려면 이런 여러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 변 하사 사건도 저는 왜 군이 그를 여군에 놓을 것인지 등을 고민하냐는 거예요. 자기 직분을 충실히 한 군인이 성별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게 직무 배제 이유가 돼선 안 돼요.”

- 성별 구분 자체가 문제라는 말씀인데,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는 노르웨이 군대에선 남녀 병사들이 같은 생활관에서 자고 같이 훈련받아요. 우리도 여군과 남군이 어떤 차이와 차별이 있으며 구분되는 이유가 있는지 등을 놓고 논쟁한다면 건설적인 방안이 도출될 거예요. 그럼에도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면, 저는 적극적으로 보정할 겁니다.”

- 평생 엘리트 코스만 밟았기 때문에 평택항 이선호씨, 구의역 김군과 같은 평범한 ‘이대남’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건 너희가 민주화운동을 해봤느냐고 묻는 것과 똑같죠. 최적화된 해법을 내놓도록 정당들이 경쟁해야 하는데 체험적 장벽을 치면 곤란해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11년 12월26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발탁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사진은 2012년 2월7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이준석 비대위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같은해 2월13일 14년3개월간 써온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했다. 박민규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11년 12월26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발탁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사진은 2012년 2월7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이준석 비대위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같은해 2월13일 14년3개월간 써온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했다. 박민규 기자

김종인, 정도전 될 수 있었지만 살짝 의기소침 상태
상왕정치?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는 사람인 거 아신다

- 클라세스튜디오를 창립하고 1년도 안돼 2011년 12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발탁되면서 정계에 입문했어요. 왜 26살에 보수를 택했습니까.

“보수정당에서 저를 불렀고 저도 큰 반감이 없었으니까요.”

- 당시 이 대표가 파격 발탁된 것은 젊은층 공략을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정작 자신은 청년이어서 혜택을 받았으면서 청년 할당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청년정치 사다리 걷어차기’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할당제 혜택을 받은 게 아니에요. 다만 영입모델이 공정하냐는 질문은 있을 수 있죠.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토론배틀 식의 길을 만들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연을 맺은 것도 2011년 12월부터다. 당시 김 전 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 참여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새누리당(한나라당에서 개명)을 극적으로 소생시켰다.

-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생존인물 중 정신적 스승으로 김종인 전 위원장을 꼽았던데, 이유가 뭔가요.

“사회에 대한 고민을 미리 많이 해놓은 분이세요. 저와 10년 전 식사하면서 나눈 대화 중 하나가 대한민국의 인구구조와 이민정책이에요. 지금 해도 좋은 논쟁거리죠. 제가 우리 역사에서 본받고 싶은 인물이 정도전이에요. 롤 세팅 또는 판 깔기가 정도전의 역할이었다면, 정도전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의기소침하신 분이 김 위원장이라고 생각해요.”

-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전 총장이 자신이 아닌 장제원 의원에게 전화한 후 윤 전 총장에 대한 기대감을 접은 것처럼 비치던데.

“윤 총장이 먼저 만나자고 했다가 틀어진 것에 대해 의아해하신 것 같아요. 모종의 인사가 또 훼방을 놨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 그 인사가 누구인데요.

“그걸 전하기는 좀 그런 것 같고(웃음).”

-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이 대표 뒤에 김 전 위원장과 유승민 전 의원이 있고, 김 전 위원장이 상왕정치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김종인 위원장은 제가 말 안 듣는다는 걸 알고 계세요. 유승민 의원도 그렇고 저와 오래 교류하신 분들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란 걸 아시죠. 그래서 저를 조종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안 하실 거예요.”

- 김 전 위원장과 자주 통화하고 사안에 대해 의논도 하나요.

“그렇죠.”

- 아버지가 유승민 전 의원과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동창이고, 하버드대 시절 유 전 의원실에서 인턴도 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유 전 의원을 자주 봤나요.

“재경경북고동문 부부동반 모임에 몇번 따라가서 뵀던 기억이 있어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11년 정치에 입문하면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도 인연을 맺었다. 사진은 2012년 3월14일 새누리당 김종인, 이준석, 조현정 비상대책위원이 서울 롯데호텔에 모여 박상일 후보의 저서인 <내가 산다는 것을>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김영민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11년 정치에 입문하면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도 인연을 맺었다. 사진은 2012년 3월14일 새누리당 김종인, 이준석, 조현정 비상대책위원이 서울 롯데호텔에 모여 박상일 후보의 저서인 <내가 산다는 것을>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김영민 기자

8월에 개인택시면허 시험...국민들 생각 접하고 싶어
‘보수의 유시민’? 비유 활용하는 노회찬 스타일 좋아해

그에겐 시련도 있었다. 노원병에 도전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3번 연속 낙선(2016, 2018, 2020년)하면서 단 한 번도 뱃지를 달지 못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후 바른정당에 합류했다가 바른미래당, 새로운 보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합류하는 곡절도 겪었다.

- 3번 내리 낙선했는데,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정치를 안 했다면, 했을 많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있어요. 그래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후 7~8개월간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볼까 생각했어요.”

- 그게 뭔데요.

“프로그래밍도 신나게 하고, 심지어 개인택시면허 따려고 올 8월11일에 시험등록도 해놨어요. 개인택시를 인수하려면 개인택시양도교육을 받아야 하거든요. ”

- 왜 개인택시면허를 취득하려 하나요.

“개인택시를 사려고요. 제가 지금껏 살면서 제일 흥미로웠던 경험이 2019년 2월 노원구의 운수업체 소속 택시기사로 취직해 2개월 동안 매일 하루 12시간씩 택시를 몰았던 일이에요. 제가 누군지 모르는 승객들이 본모습을 보여주시는데, 정치인으로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장 평균적인 생각과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게 좋아요.”

- 대선을 코앞에 둔 당대표가 택시 몰 시간이 있을까요.

“법인택시는 하루에 12시간을 무조건 몰아야 하지만 개인택시는 제가 원할 때 나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시간 날 때 짬짬이 하는 거죠. 일단 개인택시는 사놔야죠(웃음).”

- 가상화폐 투자로 선거 서너 번 치를 정도로 벌었다고요. 수익이 얼마나 났길래요.

“제가 만든 가상화폐 자동 투자 프로그램으로 투자했는데, 국회의원 선거 한번 하면 1억5000만~2억 정도 드니까, 먹고살 만큼은 번 거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러 방송 시사 프로그램의 논객으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는 “비유를 잘하고 ‘불판을 갈아엎자’ 같은 말로 한방에 프레임을 세팅하는 노회찬 의원 스타일이 멋있어 보였다”며 “요즘 비빔밥이니 육우니  빅텐트니 하는 비유가 많아진 것도 노 의원 스타일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러 방송 시사 프로그램의 논객으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는 “비유를 잘하고 ‘불판을 갈아엎자’ 같은 말로 한방에 프레임을 세팅하는 노회찬 의원 스타일이 멋있어 보였다”며 “요즘 비빔밥이니 육우니 빅텐트니 하는 비유가 많아진 것도 노 의원 스타일을 벤치마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 경선 TV토론회에서 경륜이 많은 중진의원들과 대등한 설전을 벌였는데, 평소 다방면의 지식을 쌓기 위한 공부는 어떻게 하나요.

“딱히 공부는 아니고, 논리체계를 구축할 때 제 철학과 원칙이 명확하면 적어도 말이 오락가락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TV토론 준비는 마인드맵 한 장이면 돼요. 동그라미 몇 개 그려놓고, 그 동그라미들 안에 오늘 토론에서 제게 들어올 질문들을 예측해 넣으면 끝이죠.”

- 책은 안 읽나요.

“시간이 없어요. 정치하고부터는 거의 못 읽은 것 같아요.”

- 피아 안 가리는 돌직구와 팔방미인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대표를 ‘보수의 젊은 유시민’으로 보는 시선이 있더군요.

“저는 유시민씨와는 다르게 진화할 거예요. 2016년 총선에서 낙선한 후 앞으로 논객으로, 이슈메이커로 활동하려면 어떻게 방송하고 논지를 펼쳐야 할지를 고민했어요. 상대방을 노려보며 극단의 논리를 앞세워 궤변을 펼치는 ‘유시민과’냐, 비유를 잘하고 ‘불판을 갈아엎자’ 같은 말로 한방에 프레임을 세팅하는 ‘노회찬과’냐 갈림길이 있었죠. 저는 노 의원 스타일이 더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요즘 제가 비빔밥이니 육우니 빅텐트니 하는 비유가 많아진 거예요(웃음).”

미혼으로 상계동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겐 여자친구가 있다. 결혼 계획을 묻자 그는 “결혼은 하고 싶다”면서도 “시기는 대중없다. 할 때 되면 할 것”이라고 답하고는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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